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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독립무용생태계를 위한 액션 연대’가 바라보는 것들

정리_조형빈

 

좌담 일시_ 2024년 2월 19일 월요일
좌담 장소_ 서울 모처
모더레이터_ 권태현
참가자_ 김현진 이소영 장수미
조형빈 최기섭 한연지

 

 

‘액션’의 구성

권태현 오늘 모여주셔서 감사하다. ‘독립무용생태계를 위한 액션 연대(이하 독무액)’의 활동들을 알고 있었고 지켜봤지만, 조금은 거리를 두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추천을 받아 널의 멤버로서 진행을 맡게 되었다. 독무액의 활동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독무액의 활동 안에서 ‘독립무용생태계’라고 할 때 ‘독립무용’을 어떤 범주로 정의하고 있는지, 서울문화재단의 답변서에 대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의견들은 무엇인지, 또 향후 활동을 어떻게 고민하고 상상하고 있는지 등 여러 질문이 떠올랐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은 독무액의 조직적(?) 입장보다는 개인적인 관점의 이야기, 그러니까 각자의 다름 같은 것들도 꺼내놓을 수 있는 자리가 되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해 보니 오늘 모이신 분 중에 재작년 서울무용센터에서 진행했던 〈난장토크〉에서 뵈었던 분들도 많은 것 같다. 그때 행사에 참여하셨던 분들이 느꼈던 무용계 담론의 담담함이 여기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힘을 이어받아 오늘의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오늘도 이야기를 소중하게 잘 나누고 이후에 이 힘들을 어떻게 잘 모아갈지까지 이야기가 나오면 좋을 것 같다.

먼저 독무액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부터 여쭤보고 싶다. 현재는 내부적으로 워킹 그룹과 조금 더 넓고 느슨한 그룹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또 그 안에서 오늘 참여해 주신 분들은 어떤 역할과 생각들을 가지고 계셨는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왼쪽부터 권태현, 최기섭 ©조형빈

 

장수미 올해 1월 12일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창작활동지원 최종 심의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결과라는 생각을 했다. 몸이 떨릴 정도로, 그리고 잠을 못 잘 정도로 과거로 돌아가 버린 충격에 어떤 움직임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변의 예술가들과 통화를 했는데 그들도 선정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심의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개별 심사평을 받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발표가 난 다음 주 월요일인 14일에 서울문화재단에 연락을 했더니 개별 심사평은 작년부터 없어졌고, 이제는 점수만 알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오더라.

이런 과정을 보면서 당락을 떠나서 현 상황 자체가 공정성을 확인할 수 없는 어떤 의구심을 만들어내는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까지 무용계에 작동해 왔던 구조적인 힘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만약 정말로 그런 진부한 문제가 얽혀있다면, 이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대응할 것이 아니라 함께 이의제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 나누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는 문구를 만들고 홍보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 줌으로 모인 사람들이 40명이 조금 넘었다. 특별히 사람들의 범주를 정하지도 않았고, 그야말로 오픈된 상태에서 토론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일을 진행하면서 어떤 중심이나 구성체 같은 것을 만들지 않고 문제를 중심으로 모였다가 흩어져도 상관없는 형태의 액션이 가능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나온 명칭이 ‘독립무용생태계를 위한 액션’이었다.

처음 독무액의 모임이 되었던 이틀의 줌 회의에서 많은 질문이 나왔는데, 가장 큰 질문은 이것이었다. “이번 서울문화재단의 심사 결과를 보고 무엇을 느꼈습니까?” 단순한 질문이었고, 이 질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유 문서를 만들어서 각자의 생각을 모으기로 했다. 와중에도 계속 질문했던 것이 여기 모여서 줌으로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참여하지 못한 다른 목소리들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를 중요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의견이 모이면서 어떻게 문제 제기를 할 것인가 하는 실질적인 부분에서 오픈 레터라는 형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오픈 레터를 구성하는 재료들은 처음 있었던 두 번의 미팅과 공유 문서에 모인 의견들이었다. 이 재료들을 취합해서 오픈 레터의 형태를 만들기 위한 워킹 그룹이 만들어졌다. 유기적으로,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 된 그룹이었다.

사실 마음이 좀 급했다.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심의 결과가 나온 후 규정에 따라 결과에 이의 제기를 하려면 1월 31일까지 그것이 이루어져야 했는데, 무용계에는 이런 식의 ‘문제 제기’라는 것을 이렇게 함께 모여서 무언가 행동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주변에 인접 장르의 예술인들까지 포함해서 개별적으로 많이 문의를 했었고, 결국 긴급 액션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오픈 레터의 1차 드래프트를 만들게 되었다. 만든 드래프트를 줌을 통해 공개하고 다시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거치고, 또 새롭게 워킹 그룹에 참여한 분들과 함께 글을 다듬었다. 오픈 레터를 만드는 작업을 일주일 동안 했는데,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지 않을 것, 무용계 자체를 분리하지 말 것, 우리의 의견 중에서 교집합을 찾아서 담을 수 있도록 할 것.

이렇게 만들어진 오픈 레터를 1월 27일부터 SNS 등을 통해 공유하기 시작했고, 1월 29일에 서울문화재단에 전달했다. 당시에 모인 연서명이 670명 정도 되었었고, 그러면서 동시에 공론화 워킹 그룹이 또 하나 만들어지게 되었다.

권태현 말씀을 들으면서 독무액의 활동 과정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독무액의 명칭에 ‘액션’이라는 표명이 지금 이 연대 활동의 성격을 규정하는 흥미로운 언어라는 생각도 들고, “흩어져도 상관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또 여기에 대해서는 오늘 모인 분들도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은 이렇게 모여 있는 사람들의 다른 생각들을 드러내는 것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편히 이야기 나누어 달라.

이야기 나누어주신 것처럼 오픈 레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논의가 이루어졌을 것 같다. 어떤 특정인에 대한 비난이 되지 않을 것, 넓은 범주의 무용계 자체의 분열로 비치지 않을 것 등 논제를 설정하는 과정부터 여러 전략들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이 안에서 필연적으로 어떤 파열음 같은 것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것들은 논의가 되었음에도 결국 오픈 레터에 담기지 못한 것들도 있었을 테고, 이 내부에서의 다름을 어떻게 감각하셨는지 좀 들어보고 싶다.

이소영 처음에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카카오톡으로 전달받았다. 나는 이렇게 모여서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단체 카톡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재작년 서울무용센터의 〈난장토크〉도 같은 맥락에서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독무액에 참여하면서는 서울문화재단 심사 과정과 결과에 문제 제기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할까, 라는 궁금증이 먼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번뿐만 아니라 지원사업에 지원을 잘 하지 않는데, 지원하지 않는 몇 가지 이유 중에 하나는 불신이 크다는 것이 있었다. 나는 무용을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범위로부터 자의, 혹은 타의로 밀려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춤추는 사람으로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오랜 시간 고민을 해왔다. 그런 와중에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사업과 관련하여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하니까 완전히 납득이 되었다. 정권의 변화나 심의하는 사람의 변화에 따라 어떤 예술가의 실력이나 가능성, 잠재력 같은 것들이 묵살되는 경우들을 너무 많이 봐왔으니까. 나는 생태계 자체에 관심이 있었고, 이곳을 생태계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초대를 받고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독무액의 활동을 함께 하면서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정말 많은 것들을 신뢰하지 않고 있고, 이곳을 세계로 감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세계에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그 세계만의 문화가 있고 날씨가 있고 교류 방식이 있어야 하는데, 무용계는 그냥 특정한 시간에 어떤 장소에 모여있다가 흩어질 뿐, 하나의 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픈 레터 작업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그리고 연서명을 통해 연결된 670명의 목소리들을 보면서 이것이 어떤 삶의 현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번 있어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독무액에 참여하고 지금까지 오면서 조금 전 말씀해 주신, 함께 교집합을 찾고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을 다 같이 기울이고 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무용 안에서 어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무용의 특징을 벗어난 다른 것들을 무용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순간들을 꾸준히 접해왔는데, 사실 무용 안에는 훨씬 더 깊고 넓은 레이어의 무용이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을 배제하니까 세계가 살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이야기되는 어떤 특정한 전형성 안의 무용은 사실 아주 작은 것일 텐데, 그것만 맞고 다른 것이 틀리다고 이야기하면 무용으로부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배제된다. 독무액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다 함께 포용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서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마주하고, 사람을 만나고, 사람의 얼굴을 보는 감각을 여기서 느낄 수 있었다.

 

왼쪽부터 김현진, 이소영 ©조형빈 

 

권태현 말씀을 들으면서 저도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무용계나 예술계, 미술계라고 이야기하지만 이곳을 어떤 세계로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 기회를 통해 정말 ‘무용의 세계’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국면이 드러난 것처럼 보인다. 670명, 최종적으로는 800명이 넘는 인원으로 이루어진 연서명이 무용계라는 이름을 달고 이루어진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관용적으로 언급되는 무용계가 아니라, 내가 활동하고 살아가고 또 다른 동료들이 속해 있는 말 그대로의 세계가 드러난 것이 아닌가. 무용계라는 세계를 감각할 기회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독무액은 이미 성과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는 문제가 단지 어느 정도의 수치를 통해 정치적 힘을 응축시키자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차원에서 더 근본적인 의미의 정치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문제 제기의 과정들

권태현 다시 논점으로 돌아와 오픈 레터에는 세 가지 정도의 이슈가 언급되었다. 첫 번째는 심의위원에 지원 단체와 관련된 전현직 무용학과 교수들이 포함되었던 문제, 두 번째는 트랙 구분이 되어 있음에도 신진 예술가 트랙에 경력이 오래된 컴퍼니가 선정되었던 문제, 마지막으로는 무용 심의에 토론 심의가 누락되었던 문제가 있었다. 혹시 이 외에도 다른 의견 같은 것들이 있었는지? 혹은 논의의 과정에서 이 세 가지가 주된 비판의 지점으로 모인 과정 같은 것도 궁금하다.

김현진 처음 회의할 때 날 것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것 같다. 단순히 어떤 지점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맥락 안에서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상당히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을 통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 공감대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에 이 사건이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 참여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 역시 나의 입장에서 이 이슈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흐름 안에서 각자 다른 저마다의 의견이라기보다, 하나의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C 트랙의 경우도 이 선발 결과의 대상들에 레파토리와 단체의 정기 공연과 같은 것들을 포함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적인 것인지, 혹은 심의위원과 지원 단체들과의 연결 지점들을 문제로 볼 것인지, 어느 쪽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던 것 같다.

최기섭 독무액 첫 공개회의에 모인 사람들은 무용계 창작 환경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취약성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감내해 오던 이들이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이것이 나의 모자람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각자가 느껴왔던 취약성을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다 보니 우리 사이에서도 취약성의 온도 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령 누군가는 ‘내가 보기에 저 사람은 꽤 많은 제도적 혜택을 받았는데, 저 사람도 억울해하네. 나는 저 사람이 부러운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 활동하는 안무가들 대부분은 대학 무용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무용학과를 졸업하지 않은 창작자나 외국 등 다른 경로를 거쳐 국내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보기에 대학 무용 교육을 거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받을 수 없는 어떤 종류의 혜택을 더 받아왔다고 느낄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무용계 창작 생태계에 대한 비판적 담론은 광범위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지만, 적어도 오픈 레터는 모두가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명시적인 심사상의 문제들에 초점을 맞춰 작성되었다.

권태현 모두가 함께 이야기해서 좁혀진 내용일 텐데, 그렇게 내용이 구성되면 서울문화재단이 이번 오픈 레터에 대해 답변한 내용처럼 형식적인 대응을 통해 문제점을 드러내지 않고 회피하고 넘어가려는 것과 같은 문제가 생겨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기관에서 행정적으로 혹은 절차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응해버리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러면 오히려 처음부터 더 정치적이고 조직적인 차원에서의 투쟁 혹은 구조적인 차원에서의 투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한다.

김현진 이런 식의 답변이 올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측했음에도,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모호한 지점들을 견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들이 특정 누군가의 완벽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 꺼낸 것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한 일이었고, 그것을 계속 가져가기 위해 오픈 레터의 방향을 이렇게 설정했다고 본다. 서울문화재단의 대응에 있어서는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있지만, 이것을 계기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오픈 레터에서 보이는 모호함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왔던 것 같다. 모호하기 때문에 더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내용이 굉장히 단단하고 뾰족했다면 나는 거부감이 들었을 것 같다. 이것이 연약하기 때문에 더 많은 도움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김현진 ©조형빈 

 

장수미 오픈 레터의 내용을 마무리했을 때, 사실 이 내용이 장기적으로 싸움을 이끌어갈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칼날같이 가/부를 정하고 사과를 받아내거나, 시정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답변을 받아내기 위한 오픈 레터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 본다. 실질적으로 관련된 내용을 많이 찾아보기도 했다. 문제가 된 무용단의 현재 예술감독은 누구고 안무가는 누구인지, 실명을 거론해서 오픈 레터에 넣을 수 있는지 여러 방식을 고민했다. 작년까지의 기록들을 다 찾아서 내민다고 해도 제도가 결정해 놓은 부정행위의 방식에 속하지 않는다면 결국 심증의 차원에서 그칠 것이라는 한계가 느껴졌다.

트랙 방식의 문제 같은 것들도 웹사이트에 이미 나와 있는 규정을 들고나오면 그만이고, 많은 것들이 파고들기에는 무용계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어서 모호해 보였다. 오픈 레터를 통해 문제 제기를 하면서 이것을 재심사까지 끌어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재단이 요구하는 증거는 무엇을 해도 불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나?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오픈 레터를 시작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계속 밝혀나가는 방식이 되어야 할 텐데, 동시에 여기에 모인 목소리 안에서는 집단이기주의를 경계하면서 케어가 필요한 누군가를 적으로 만드는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어쩔 수 없는 결정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권태현 원래 제도라는 것 자체가 이런 갈등을 계속 조율하면서 만들어지지 않나. 독무액에서 오픈 레터 이외에도 간담회 등 다른 방법의 소통 창구도 요청했던 것으로 아는데, 관련하여 진행되고 있는 지점이 있는가?

장수미 오픈 레터에 대한 최초 대응이 왔는데 그 안에는 간담회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독무액에서는 간담회에 대한 내용은 왜 없는지 재차 요청을 했는데, 서울문화재단 측으로부터 최초의 대응이 공식적 답변이며 공개 간담회는 무용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까지도 함께 이루어질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만약 대면으로 더 심도 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면 비공식적으로 문의하라는 내용이었다.

김현진 그래서 그 답변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서한을 보냈다. 비공식 대면 간담회를 진행할 경우 그곳에 나와야 하는 필수 인원과 독무액에서 원하는 자료들, 즉 문제 제기를 했던 부분들에 대해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근거들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한연지 서한을 작성하면서, 우리가 대면으로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단순히 미팅 날짜를 잡고 가는 것만으로는 기계적인 답변을 들을 뿐, 어떤 소득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고 그것을 6가지 정도의 논지로 정리해서 재응답 서한을 보냈다. 서울문화재단 측에서도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서 그 자리에서 답변을 받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소영 관행적인 답변만 오는 태도를 진단해 보면, 서울문화재단은 무용이라는 세계를 이해할 생각이 없었다고 본다. 재단으로부터 온 답변의 내용의 마지막에는 이 모든 것들이 절차대로 진행되었고, 기금이 많이 줄어든 상황에서도 노력하고 연구해서 진행했는데 이런 결과가 되어서 미안하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문화재단이 이에 대해 얼마나 연구했고 어떤 전문가들과 만나서 동시대 무용계에 대해 파악했는지 자료를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을 서한에 담았다.

권태현 독무액에 참여하고 계신 분들 중에 서울문화재단의 기금 제도를 조정하기 위한 기존의 공청회에 들어갔던 분은 없나?

이소영 서울문화재단에서 400여 명을 대상으로 기금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는 이야기하더라. 그런데 여기에 그 설문에 참여한 사람이 있나?

한연지 잘 알려지지 않은 간담회들, 설문조사를 했다고 하는데, 이런 과정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주위에 아무리 물어봐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과연 누가 이것을 만들고 있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것이다.

 

장수미 ©조형빈

 

미학과 제도의 투쟁 안에서

권태현 조금 더 근본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사실 나는 이런 일은 무용뿐 아니라 예술계 일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는 이것이 미학적인 투쟁인지, 아니면 단지 행정적인 문제일 뿐인지에 대한 논의까지 연결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본다. 재단에서 400명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무용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그 400명 안에 속한 사람이 없다는 것. 이것은 어떻게 보면 미학적인 단절이기도 하다. 무용계는 대체 무엇인지, 저들이 이야기하는 무용계라는 세계는 내가 속해 있는 세계는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지는 감각, 이런 문제는 미학적인 입장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특히 무용계 안에서는 학연의 문제가 크게 작동하고 있고, 대학 무용단과 같은 시스템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컨템포러리 댄스라고 흔히 부르지만, 컨템포러리 댄스는 하나의 장르나 형식일 수 없다. 말 그대로 다양한 미학적 형식들이 컨템포러리 안에 포함되는데, 지금 독무액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에는 바로 이런 구조적인 문제까지도 함께 얽혀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컨템포러리 댄스의 반대항처럼 일컬어지는 모던 댄스, 혹은 트래디셔널 댄스에 속하는 사람들이 투쟁의 대상이 될 필요도 없고 그 대상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김현진 나는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대학 무용단에서 활동했었던 사람으로서, 내가 독무액의 액션을 지지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대학을 졸업한 많은 무용인들이 결국 어떤 교수 아래에서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런 구조 안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세계를 펼치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실질적으로 이런 액션이 어떤 미학적인 투쟁일 수도 있겠지만, 무용계 안의 층위를 단순히 두 갈래로 갈라진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섞여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심사 결과에서 문제 제기한 부분 중, 신진 예술가에게 기금을 주는 A 트랙에서 어떤 오래된 대학 기반 무용단의 이름이 눈에 띄었던 것도 그 안에 작동하는 위계 관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용단 소속의 신진 예술가가 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영광은 누구에게 가는가? 예술가가 아닌 오래된 무용단 자체에게 돌아간다. 대학 무용단의 시스템을 낱낱이 뜯어본다면 그 권력적인 관계가 명료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어떤 특정 무용단이 아니더라도, 대학 무용단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런 구조에 대해서 매우 답답해하고 불만을 가지지만 그것을 말하지 못한다. 스스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자조하면서, 공연이 있으면 돈 한 푼 받지 않고 내가 내 돈을 지출하면서 그곳에서 춤을 춘다. 과연 이 구조 안에서 무용인이 자생하는 것이 가능한가? 나는 내 주변에 더 많은 예술가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불가능한 데에는 이런 구조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소영 다른 예술계에는 예총이나 민예총처럼 여러 단체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용계에는 ‘다른 쪽’이 없다. 재단이나 공공기관들이 보기에 무용계에는 그냥 ‘무용계’가 있을 뿐, 나머지는 없다. 다시 말해 물어볼 대상이 없는 것이다. 서울문화재단의 답변 역시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오픈 레터에 대한 답신에 언급되었던 설문 조사한 400여 명이 누구냐고 묻지만, 재단의 입장에서 무용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있는 셈이다. 이 구조로부터 취약해진 사람들이 문제 제기를 한 것인데, 재단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에 가까운 대답을 내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갈래들, 주류와 비주류 정도의 갈래들이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들을 중심으로 무용계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소수의 방향성을 무용이라고 정의내리고, 그것이 아닌 것은 무용이라고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여기에 있다. 기관들의 방향성이 이런 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무용을 몸의 기능적이고 신체적인 미학을 찾는 것으로 좁히고 있는 것이다.

주변의 어르신들이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업들을 언어적으로 갇혀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여기에 몸이 어디 있고 춤이 어디 있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피땀눈물’을 흘려줘야 춤인 것이고, 그렇지 않은 춤들 때문에 오히려 ‘춤’의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내가 보기에는 춤의 흐름이 바뀌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인데, 이 변화를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있어왔던 실험적인 안무가들의 자리를 열거나 리서치 과정을 보여주는 쇼케이스를 여는 것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여기에 있다.

이런 것들을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 되묻게 되었다. 과연 그렇다면 무용은 어디서 완성되는 것인가? 무용을 완성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 명확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무용이 아닌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은 무용이 아닌가? 만약 그것이 정치적인 이유에서든 미학적인 이유에서든 여러 가지 가능한 세계가 존재한다면 조금 덜 답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의 무용계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권태현 만약 그렇다면 미학적 투쟁이라는 것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생각하는 ‘무용’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최기섭 예중, 예고, 예대로 이어지는 교육 제도 위에서 형성된 무용계는 견고한 이념과 문법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그것은 주로 창작자를 양성하기보다는 무용수를 양성하기 위한 제도이며, 이러한 제도적 조건 하에서 춤을 추는 방식은 상당 부분 이미 정해져 있다. 이런 정형성을 바탕으로 국내 무용계는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이라는 장르로 삼분화된다. 삼분화된 장르들은 특정 형식의 춤을 유지해야만 자신들의 바운더리를,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킬 수 있다. 대학 무용학과가 그렇고 입시 무용학원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장르의 경계를 지키려는 이들에게는 예술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예술의 기초적인 고민과 질문은 누락될 수밖에 없다. 단지 특정 장르의 춤을 가르치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창작활동지원 심의 위원이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으로 나뉘어 구성되었다는 점은 문제적이다. 예술창작활동지원은 예술가의 창작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이다. 예술가의 창작 세계관과 작업 계획을 심의하는 데 있어서 어째서 전공별 심의 위원이 있어야 하는가?

나는 이번 사건이 근본적으로 미학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동시대 예술가의 사명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끊임없이 과거의 춤을 질문하고 미래의 춤을 상상하는, 예술가로서 마땅한 태도와 창작 실천의 방식을 일부에서는, 특히 제도권 무용의 시각에서는 ‘개념 무용’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올해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심의 위원에 무용학과 교수들이 대거 포함되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대학 동문 무용단이 선정되었다는 사실에 따른 형평성의 문제 제기의 이면에는 근본적으로 심의 과정에서 어떤 미학이 주축이 되어 작동했는지에 대한 미학적인 문제 제기가 있다.

 

최기섭 ©조형빈

 

장수미 미학적 논란과 견해는 사실상 정책이 만들어 가고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한 해의 심의위원을 맡은 특정하지 않은 대학교수라는 직군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공기관이 진행하는 사업들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해야만 이 미학과 만날 수 있는 것인데, 지금의 제도와 정책에서는 비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정책 자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용계의 경우 오랫동안 협회와 그 협회가 주최하는 굵직굵직한 이벤트, 대학교수가 이끄는 무용단이 결정하고 채우는 일들이 무용계 안에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거시적 안목으로 보면 많은 공적 예산이 그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 구조 안에 포함되지 않은 생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때문에 어떤 실험과 미학이 끊임없이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도는 인식해야 한다. 사실 저 압도적인 비율의 공적 예산의 규모에 비하면 서울문화재단에서 주는 예술 창작 기금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예술가이자 주체로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느낀다.

권태현 말씀하신 것을 들으면서 내가 던진 질문의 오점을 발견했다. 장수미 안무가의 말을 들으면서 제도적인 투쟁과 미학적인 투쟁이 이분법적으로 분리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의 예술 지원 제도 안에 다원예술이라는 장르가 신설되었던 것도 행정적인 절차의 변화로 인해 나타난 현상인데, 이 자체가 결국 미학적 결과물들을 만들어냈고 새로운 미학적 차원의 형식 문제를 촉발시켰다. 결국 문제를 미학적인 투쟁으로 끌고 갈 것인지, 혹은 제도적이고 절차적인 투쟁의 문제로 끌고 갈 것인지의 고민을 이분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결론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닐까.

김현진 다원예술 장르에서 지원금을 받는 분들을 주위에서 많이 본다. 나 역시도 그러한 사람 중에 하나다. 그런데 다원예술이라는 장르적 분리가 오히려 무용의 카테고리를 협소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진다고 느끼기도 한다. 더불어 어떤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 단순히 비난과 비판으로 누군가와 편 가르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어떤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개선을 해나가자는 이야기인데, 마치 정해진 답으로 방점을 찍는 납작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문제 제기가 일종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역시 문제를 공론화해서 논의하는 것을 피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권태현 연서명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것 역시도 무용계 안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부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짚어야 하는데, 제도는 이것을 너무도 쉽게 피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액션을 취했을 때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로 여기 우리가 있다고, 그 존재를 알리는 행위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와 같은 땅을 딛고 있는 사람들이 그래도 여기 이만큼이나 있구나, 라고 깨닫는 것 자체가 기관의 제도적 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내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아닐까. 구체적인 투쟁과 성취도 중요하겠지만,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고 무용계 바깥이라고 치부되던 영역이 가시화되면서 무용계라는 ‘불가능한 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든 감각되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성과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미래를 상상하기

권태현 마지막으로 오늘 나왔던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는 측면에서, 독무액의 거취에 대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각자 주체의 입장에서 저마다 생각이 다를 텐데, 이야기 나왔던 것처럼 이슈 파이팅 이후에 자연스럽게 해산하는 것을 상상할 수도 있고 혹은 이것이 기회가 되어 더 구체적인 조직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전망, 혹은 독무액의 활동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같은 것도 함께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김현진 나 역시도 다른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회피형의 인간이기 때문에 사실 언제든 이렇게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다. 항상 뜻을 같이 하고 싶은 마음과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는데, 독무액에 있어서는 어떤 뱡향이든 이게 단단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단단해져버리면 나는 도망가고 싶을 것 같다. 내 주변에도 독무액의 활동에 대해서 의심과 비판의 눈초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입장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느낀다. 이 불안정한 위치가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 시간이 주어진 것 같아서 좋았고, 말을 꺼낼 수 있는 용기라는 단어가 자꾸 떠오른다.

한연지 나는 한국에서 무용을 전공하지 않았고, 독일에서도 대학 바깥에서 무용을 공부했다. 그래서 한국의 무용계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한국의 무용을 대할 때면 스스로 외국인처럼 느껴진다. 다들 잘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어떤 언어들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어떤 언어나 역사들을 갖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독무액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그런 말들이 담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주어지고 있는 것 같다.

독립무용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데, 그것이 가시화되고 내가 경험하는 환경이 여기에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나에게 큰 의미였던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서울문화재단에 박치기하고 있는 느낌이지만, 어찌됐든 소리는 들리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어떤 울림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 자체로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고 느꼈다.

한국에 독립무용 공연이 어디에서 누가 하는지 알 길이 없었는데, 여기는 누구든 와서 무언가를 알아갈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알려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해 왔었다. 창작을 하고 싶어도 공간 조차 없는 상태에서 공간과 시간이 주어지면 새로운 것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작년에 지원금을 받게됐을 때는 독무액이 액션을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오늘 나눈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을 모른 상태였다. 이제야 생각해보면 신기한 결과였다고 느껴진다. 의도와 달리 2023년의 대부분을 지원금을 받게된 작품에 신경써야 했고, 공연이 끝나고 나서 후년 지원서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지원서 제출 여부와 상관없이 이번 서울문화재단의 심의 결과를 마주하게 되면서 앞서 생긴 무기력이 단숨에 증폭됐다. 하지만 독무액이라는 공간에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말하고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독무액에서 다수가 꿈꿀 수 없음, 상상할 수 없음의 상태를 함께 마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마주함으로부터 많은 상상이 시작될 수 있다고 감각했고, 교류가 일어난다는 감각이 희망과 연관이 있나 생각하게 했다. 독무액이 나에게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주어지는 모임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한연지 ©조형빈

 

최기섭 우리의 활동에 소기의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800명 이상이 연대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목소리가 전달됐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 결국 서울문화재단과 같은 공공기관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은 불투명한 현장의 목소리라기보다는 확실한 정체성이 있는 집단들, 가령 무용협회나 무용교수인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단체를 만들고 운영을 해 나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의 예술창작지원사업이 공정성을 확보할 때까지 이 활동에 어떤 형태로든 계속 참여하고 싶고, 같이 해 나갈 동료들을 만나고 싶다.

장수미 나는 최소한 서울문화재단과의 공개 간담회까지는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맨 처음 독무액을 구성할 때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를 떠올려보면, 우리가 지적하고자 했던 부분은 제도 혹은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소통창구를 마련하고자 함이었다. 무용계의 한쪽에서 구축해 온 공고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관이 소통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제도의 변화는 완전히 신뢰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계속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를 드러내고 인식해야만 질문이 만들어지고, 질문이 있어야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은 문을 두드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상황이 추상적으로 느껴지는데, 현재 우리가 얼만큼의 힘인지, 우리가 누구 일 수 있을지 잘 모르는 상태이므로 둥둥 떠 있는 불안한 상황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단과의 대면 소통으로 현존하는 한쪽의 중요한 목소리를 알릴 수 있는 상황에 정말로 가고 싶다.

얼마 전에 우연히 누군가와 예술계 안에서의 구조와 역할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세 가지 역할로 아티스틱 디렉터(artistic director)와 아티스틱 퍼실리테이터(artistic facilitator), 그리고 아티스틱 오가니제이션(artistic organization) 이렇게 나뉘어지는데, 과연 그러면 재단은 이 중에서 무엇이 될 수 있고 독무액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독무액은 여기서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운동이 될 수도 있고 행위를 통해 매우 실질적인 매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독무액의 활동에서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개인적으로 결코 쉬운 것들이 아니다. 쉼없이 컴퓨터를 보고 있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일의 구조를 생각하는 것도 힘들다. 지금까지 항상 해 오던 예술작업만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하지만 이 예술계에서 예술가 주체로, 이건 내가 존재하는 환경의 문제이고 그 때문에 그냥 놓아버려서는 안된다. 변화 방법들을 찾는 과정이 갖는 가치를 통해 충족하고 싶기도 하고, 독무액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소영 나는 독무액을 통해 원대한 꿈을 꿨던 것 같다. 함께 이런 움직임들을 시작하면서 행복했고, 꿈을 꿨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아마도 어떤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들락날락한 장면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각자 오면 같이 연습도 하다가 언제 갔는지 모르게 누구는 가고 누구는 올 수 있는 이런 공간, 또 와중에 쇼케이스나 공연을 하면 우루루 경계없이 같이 보러갈 수 있는 공간, 어떤 비난 없이 서로 지지하면서 씨앗을 발아시킬 수 있는, 편하게 나의 춤을 소개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실질적으로는 서울문화재단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 나 역시도 조금 바뀔 것 같다. 만나서 이야기를 잘 해내기 위해 전략적인 고민들을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안하무인격의 태도를 보인다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다른 연대체들과 이야기 나눠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예술가이다보니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이런 상태에서 몇 년을 보내니까 이 상황들이 작업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개인과 사회가 연결되는 지점들을 작업 안에서 발견하곤 하는데, 독무액 역시도 여기서 소모되지 않고 이 이슈가 나의 예술과 별개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이어졌으면 좋겠다. 서울문화재단과 같은 기관들이 자칫 거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또 그만큼 허술하기 때문에 이런 액션들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 틈을 잘 파고들어갈 수 있다면 충분히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조형빈 오늘은 옆에서 열심히 듣는 것에 주력했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 일종의 장기적인 싸움이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아까 지원 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현재와 같은 지원 시스템이 10여 년 남짓 진행되면서 지금이 딱 전환이 되는 어떤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용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오던 활동들이 다른 형태로 옮겨가는 긴 전환점을 가지고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태의 활동은 사실 단기간에 끝날 수도 없고,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기관들의 경우 몇 년이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인원들이 계속해서 바뀐다. 기관장이든 담당자든 모두 그렇다. 만약 우리가 지금 큰 변화의 흐름 안에 있는 것이라면, 결국 이것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이런 과정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서울무용센터에서 발간하던 춤in이 없어진 사례처럼 계속해서 무언가는 변화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역할과 기대는 무엇이 있을지 계속 찾아가보려고 한다.

권태현 오늘 이야기 나누면서 많이 배우고 힘을 얻었다.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했던 것보다 독무액의 활동들이 훨씬 더 중요한 국면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건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또 그전까지 가시화되지 못했던 것들을 드러나게 하는 어떤 움직임이 된 것 같다. 나 역시도 열심히 힘을 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독무액의 활동을 정리하는 자리도 아니고, 중간 점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 대담을 통해 서울문화재단의 답변 이후로 지금과 같은 자리를 마련하여 독립 비평매체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잘 실현된 것 같다. 또 이러한 이야기들이 기록으로 남음으로써 미래의 우리와 또 다른 동료들에게도 힘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의미있는 대화들,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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