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적인 것 너머의 못남과
못생김의 소중함:
디자이너 인터뷰

상현 안녕하세요. 바쁜 연말 일정 와중에 인터뷰에 흔쾌히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인데, 공교롭게도 저희 셋 모두 솔로라서 이렇게 모일 수 있었네요. (웃음)

잠시 널에 관해 소개 드릴게요. 널은 몸을 중심으로 퍼포먼스와 공연예술에 관련된 비평 활동을 이어가는 웹진입니다. 두 분을 초대한 이번 호의 주제는 ‘못생김’이예요. 디자이너는 제품의 사용성을 고려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항상 신경 쓰며 작업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대중성에서 벗어난 디자인을 할 때조차도 클라이언트와 사용자를 고려할 수 밖에 없죠. 이런 맥락에서 디자이너가 바라본 못생김이 뭘까 궁금했고, 각각 독립 디자이너와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두 분을 초대하여 ‘못생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두 분이 만난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디자이너 김국한님과 동동님입니다.

국한 네. 반갑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동동 반갑습니다.

상현 몇 주 전 널 편집위원 네 분과 못생김에 관한 대담을 했어요. 거기서 나왔던 이야기들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예술 작품은 물론, 일상에서 시시각각 못생김을 만나죠. 미술씬의 경우 프리랜서 작가는 물론, 국공립과 사립 미술관에서도 그래픽디자인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어요. 디자인을 일종의 작품으로 대하며 많은 예산과 시간을 투입합니다. 근 몇 년간 이런 현상이 더 가속화되는 것 같아요. 저희는 ‘못생기지 않기 위한 노력’,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노고를 살피며, 이를 둘러싼 질문들이 생겼습니다.

어떤 것을 못생기고,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시대와 사람마다 상대적인 것인지? 지자체가 주도한 디자인을 종종 못생겼다고 평가하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기준이 뭔지? 작품의 제작 예산 중 디자인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이 현상이 시각 중심적인, 인스타그래머블한 시대와 관련이 있을지? 못생김과 가난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의도적으로 못생김을 추구하는 경우처럼 못생김은 때때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데, 이때의 못생김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어쩌면 예술가나 평론가보다, 일상생활의 시각물을 다루는 그래픽디자이너가 이 질문들에 흥미로운 대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디자인 업계 전반과 마케팅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니까요. 국한 디자이너님의 경우 전시 그래픽 작업, 영화나 인디음악 씬에서 독립 디자이너로 계속 활동하셨고, 동동님은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오래 일해왔기 때문에 이런 질문들이 피부로 와닿을 것 같아요.

지난 대담에서는 공공기관이 추구하는 미와 ‘못생김’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지자체 문화재단에서 제작한 웹사이트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동동 한 번 사이트를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웹사이트를 화면으로 공유했다.)

국한 진짜 공식 웹사이트가 맞나요? 금색 그라데이션이 드라마 『스카이캐슬』 같은 인상이 들기도 해요.

동동 이건 재단 전체의 미감이라기보단, 시안을 최종 컨펌한 사람의 취향이 크게 반영되었을 것 같아요.

상현 이 사이트의 웹 디자인이나 로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재단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또 로고 이미지가 눌려 있다든지, 윗부분이 모양이 잘려 있다든지 오류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발견했어요.

동동 저는 재단 공식 로고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같은 재단의 결과물인데도 웹 사이트의 경우는 이렇게 다르네요.

상현 네. 이 사이트는 재단의 지원을 받은 전시와 공연, 행사를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에요. 시각 분야와 연극, 무용, 전통예술 공연들의 포스터가 전반적으로 어떤 경향성을 띠는지도 볼 수 있네요. 뮤지컬 포스터의 경우는 이렇게 북극곰 같은 동물 캐릭터를 직접 사용하기도 해요.

국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뮤지컬 포스터는 직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니까요.

상현 많은 분들이 이 웹사이트가 여러 차원에서 아름답지 않다고 이야기 했는데, 어떤 점에서 이렇게 느끼게 되는 걸까요?

국한 이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행사들, 전시, 공연들은 모두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 웹사이트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 마음이 너무 못생겼죠. 왜 다양한 성격을 가진 작품들을 포용하기를 저버리면서까지 고급스러워 보이려고 할까요? 작품의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게 중요한 지점인 것 같아요.

동동 비슷한 이야기인데, 이게 시각적인 결과물이 예쁘냐 안 예쁘냐, 과도한 그라데이션이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도대체 이 웹사이트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 그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플랫폼이고, 다양한 전시를 담는 그릇이잖아요. 근데 이 경우에는 그릇이 더 앞서서 뭔가를 전달하고, 작품보다 더 두드러진 것처럼 보여요. 이렇게 과잉된 디자인은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보이는 거죠.

국한 이 디자인이 지자체 문화재단에서 지원한 행사들만 명예의 전당처럼 영광스럽게 보이게 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고급 아파트 분양 사이트 같기도 하고요.

상현 아이러니한 게, 최근에 동일한 재단에서 기금을 받지 않고 준비한 전시를 수상하는 기획을 진행했어요. 기금 중심성을 조금이나마 탈피하기 위해서요. 정말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또 웹사이트는 기금을 받은 창작자들의 작품을 명예의 전당처럼 소개하는 방식은 다소 모순적인 것 같아요. 결국 결정권을 가지며 소통하는 분들 사이에서 큰 방향성에서 의사교환이 안된 부분이 생긴 것이 겠죠. 기관이 어디를 목표로 하고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따라서 디자인을 고민하고, 이걸 기반으로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일까지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이 개선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이번엔 반대로 못생김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예시를 가져와 봤는데요. 퀴어나 하위주체 작업물의 경우 못생김을 추구하는 미학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이반지하 작가님의 포스터들. 공기관에서 발표한 작업의 포스터인데,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동동 B급 감성 같은 거라고 보면 될까요. 사실 일부러 못생김을 추구하는 것과, 그냥 어쩌다 보니 B급으로 보이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상현 맞아요. 또 의도했을 때는 확실히 기존과는 다른 선택을 하죠. 이런 맥락에서 못생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의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가? 질문하기도 했어요. 디자이너들이 통상 촌스럽다고 여기는 굴림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잖아요. 굴림체가 담고 있는 레트로한 감성을 사용하는 건데, 어쩌면 당시에는 굴림체를 촌스럽다고 여기지 않았을 거예요. 이렇게 보면 촌스러움이나, 못생김은 시대적・문화적 차이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지난 대담에서 중요했던 것은 이처럼 ‘못생김’을 각자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그 기준에 관해 이야기해 보는 것이었는데요. 디자인을 하는 두 분은 ‘못생김’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못생김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동동 제 생각에는 ‘못생김’이 무엇인지는 대상에 따라 기준이 다양한 것 같아요. 최대한 구체적으로 답해보자면, 못생김은 ‘고민하지 않는 태도와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제가 얼마 전에 제주도에 다녀왔는데요. 우리나라에는 멋진 자연경관을 가진 곳들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더해진 소프트웨어적인 것들이 개인적으로 못생기게 느껴졌어요. 제주도뿐 아니라 어디를 가도, 관광지라고 하면 비슷하게 생긴 포토스팟이 꼭 있어요. 하트 모양 벤치나, #아이러브(장소명) 조형물 같은 것들이요. 일례로 제주 시내의 한 해안가 산책로도 그대로 두면 사람들이 그곳을 자유롭게 이용할 텐데, 굳이 전통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조형물을 만들어 두었더라고요. 왜 지자체가 돈을 써서 풍경을 더 못생기게 만들까란 생각을 했어요.

추측해 봤을 때 이런 조형물이 어느 한 지역에서 히트를 쳐 관광객 유치가 되고, 사람들이 거기서 사진을 많이 찍는 것을 보고 지자체 공무원들이 기존 사례를 무조건 답습한 것 같아요. 사실 전 이런 조형물이나, 포토 스팟을 만드는 행위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크리에이티브한 고민을 한다면 각 지역에 맞는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포토스팟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잘 됐으니까 그냥 갖다 쓰는 태도가 못생김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보면, 거기에 하트 모양과 같은 시각적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게으른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한 나태한 태도가 못생긴 거죠.

이미지 출처: 고안나(@filigranpflanze) 게시물, X, https://x.com/filigranpflanze/status/2002666188976103802?s=20

하상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통쾌하기도 하네요. 국한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국한 못생김은 주관적인 거라고 생각해서 이 주제를 듣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어떤 걸 예뻐하고 어떤 걸 못생겼다고 생각하는지… 이걸 생각해 보려면 과거로 올라가야 할 거 같아요. 제가 디자인과를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던 19살, 20살, 그때쯤으로요. 저는 당시 네덜란드, 스위스 디자인에 매료되어서 많이 찾아보고 자라온 터라, 그런 디자인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다 못생긴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죠.

그래서 동동님께서 말씀하시는 생각하지 않는 태도에서 나온 결과물도 못생겼을 수 있지만, 사람마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과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준이 달라서, 모든 것이 다 못생긴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 살아온 환경과 그동안 본 것들이 다르니까요. 어떤 사람은 내가 되게 좋아하는 걸 보고 못생겼다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내가 되게 싫어하는 걸 보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저희 셋 모두 못생겼다고 동의하는 지자체의 조형물이나 재단 웹사이트도, 누군가는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못생긴 것은 주관적이라는 것을 우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래도 굳이 이미지 생산자 입장에서 어떤 걸 ‘못생겼다’라고 느끼는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욕망을 단순하게 들이미는 것들이에요. 주로 고급스러워 보이려는 혹은 아름다워 보이려는 욕망이죠. 남들과 위계를 나누려고요. 앞서 이야기한 웹사이트도 고급스러워 보이려는 욕망이 과해서 이상해진 것 같아요. 금색 그레이디언트 같은 것이요. 유치한 것들도 못생겼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식당 같은 곳에서 “너는 고기 먹을 때 제일 예뻐”라는 문구가 네온사인으로 박혀 있는… 이런 것을 못생겼다고 느끼네요.

동동 재단 사이트 이야기하니까 갑자기 든 생각인데, 저는 거의 중학교 때부터 포토샵과 웹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하며 디자인을 시작했거든요. 그때 제가 당시에 만들던 홈페이지 느낌이, 이런 디자인과 비슷했어요. 그때 이런 그래픽이 유행이었고, 당시 전 이런 디자인을 좋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교 2학년 때, 포스터 디자인 과제를 내준 교수님이 제 포스터를 보고 “잘 노력해서 만들었는데, 너무 기성 디자인 같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당시에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 이후 어떻게 해야 내 디자인이 기성 디자인처럼 보이지 않을까, 한 학기 내내 계속 고민하며 그 포스터를 발전시켰어요.

그래서 전, 이 웹사이트도 신경을 좀 더 써서 계속 고민하면 소위 우리가 말하는 ‘좋은 디자인’의 모습을 띨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못생긴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과 서로 완전히 다른 게 아니라, 그저 고민의 초기 단계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국한 저도 완전 동의해요. 고민해 보면 나아지지요. 근데 그 고민을 하는 것도 어쩌면 되게 엘리트주의적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도, 말하자면 엘리트주의적인 결과물일 수도 있어요. 그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역량이 있어야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들을 만들 확률이 높아지는데, 그런 것들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동동 저도 동의해요. 한편으로는, 고민 자체가 초점이라기보단, 창작자에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주어져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 바로 ‘너는 못하는 디자이너야’, ‘이건 못생긴 결과물이야.’ 이런 식으로 판단하는 건 좀 위험한 잣대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국한 사실 이 웹사이트도 신경을 많이 쓴 게 보여요. 계속 기존의 디자인을 답습하고 고민하다 보면 나아질 수 있죠. 그런데 그 나아진다는 기준 자체도 말한 것처럼 엘리트주의적인 시선일 수 있어요. 사실은 1
세계 백인적인 감각들인 거죠. 학교에서 배우고 책에서 읽는 것들은 대부분 그들과 그들의 작업에 대한 것들이니까요.

상현 기존의 ‘좋은’ 사례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모델이 서구 지식인의 특정한 디자인이나 사유의 패턴을 배경으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죠?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어요. 서구 문물이 들어오기 전 한국에도 디자인이 있었잖아요.

국한 그렇죠.

동동 디자인은 항상 있어요.

상현 서구의 문물과 교육 시스템이 들어오기 전 한국에서는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방식이 달랐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다른 방식으로 작업했을 것 같은데, 아시는 바가 있나요?

동동 한국만 예를 들자면, 그런 디자인 기술 같은 것은 도제식으로 많이 전수했어요. 특정 스타일을 이어받는다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스승님의 유산, 스타일과 계보를 이어가는 식으로요.

국한 아니면 당대에 유행했던 왕, 귀족들이 좋았던 스타일이 있었을 것 같아요.

동동 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기술에 있어서 무언가 새롭게 가능해지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질 수록 디자인이 못생겨지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그라데이션 기능이 없거나, 합성을 못 하는 상황이라, 그냥 텍스트와 단순한 레이아웃으로 홈페이지를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지금 보다 더 나은 결과물이 나왔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상현 기술반대론인가요? (웃음)

동동 컴퓨터 그래픽 툴이 발전하면서, 2000년대 초반 올림픽 포스터들이 사실 지금 보면 너무 과하고, 오히려 그 전 60~80년대 디자인들이 지금 보아도 세련되어 보인다고 평가하잖아요.

1972년 뮌헨 올림픽 엠블럼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포스터

상현 그럼 서구의 디자인 방법론이 등장하기 전 그래픽 디자인은 뭐라고 불렀을까요?

동동 보통 도안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 후는 응용미술이라고 하기도 했고요. 그래픽디자인의 경우 문양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일이었을 것 같아요. 당시 활판 인쇄술이 있었으니까 그래픽 디자인은 늘 존재해 왔다고 할 수 있죠.

상현 활판인쇄, 문양, 서예 등이 기능적인 역할만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일전 대담에서도 민예와 문인화를 비교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당대에는 문인화가 더 멋있는 것이었는데, 현재에는 민예에서 표현되는 다양성을 더 높게 평가한다고 하더라고요. 시대에 따라 아름다움이 점차 발전하고 나아진다기보단, 현재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서 기준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국한 그래서 말씀하신 재단 웹사이트도 한 15년 전에 봤으면 되게 멋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가로 스크롤도 잘되고요.

상현 가로 스크롤과 같은 기능의 아름다움을 평가할 때도, 기술이 상용화된 후에 알맞은 곳에 그 기능을 사용했는지 물으면서, 최종적인 결과물을 평가하게 되는 것 같아요.

동동 맞아요. 그래서 옛날에 그라데이션이나 드롭쉐도우같은 새로운 효과들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는 그게 적용된 디자인이 다 예뻐 보였어요. 지금도 AI가 만든 것들이 신기하게 느껴져 많이 생산되고 있지만 미래의 어 시점에는 신물이 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거죠. 너무 많이 봐서 식상해지기도 하고요. AI가 생성한 지브리 풍의 프로필 사진도 처음에는 너도나도 신기해서 하다가 나중에는 식상하고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처럼요.

국한 어쩌면 못생김은 동동씨가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지 않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디자인도 어쨌든 결과물이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거든요. 근데 사실 그건 못생겼다기 보다는, 재미가 없는 거죠. 예를 들어 아까 봤던 북극곰을 사용한 포스터도, 글자도 북극곰처럼 부드럽게 생겼고, 내용을 그래픽으로 전환할 때 아주 친절하게 보여줘요. 어린이를 위한 뮤지컬 포스터니까요. 제 기준에선 그걸 뜯어보는 재미는 없지만요.

동동 근데, 이게 진짜 주관적인 것 같아요. 아까 국한씨도 우리가 대중과 조금은 동떨어진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본다고 하셨잖아요. 이 말씀이 되게 공감됐어요. 저는 관광지마다 있는 하트 조형물이 너무 싫은데, 다수의 사람들은 좋아하고 사진도 많이 찍어요. 전통놀이를 하는 사람 조형물 옆에서 사람들이 포즈를 따라 하기도 하고 즐거워하죠. 이런 것들이 전부 수요가 있고, 이것을 만든 사람들도 그 대중의 일부인 거예요. 그래서 디자이너들에게 관광지 환경 조성을 맡긴다고 했을 때 결과물이 마냥 좋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아요.

국한 맞아요. 저희 둘 다 엄청 대중적인 디자인을 하는 건 아니니까, 저희가 말하는 못생겼다고 하는 것들은 좀 걸러 들어야 돼요. 저희는 대학에서 미술 교육을 받았고, 직업이 디자이너이니만큼 남들보다 더 취향을 날카롭게 만들려고 애썼으니까요. 어쩌면 이 인터뷰를 보는 독자들도 전반적으로 비슷한 취향을 공유할 수도 있고요. 그 사실을 인식해야 하는 것 같아요.

동동 그래서 한편으로는 좋은 디자인은 무엇일지 생각했을 때는, 소수에 의해서만 소비되는 게 아니라, 다수가 사용하고 소비하지만, 디자이너와 일반 대중 모두에게 공감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적이면서 동시에 좋은 평가를 받는 디자인. 그 밸런스를 찾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그것을 잘하는 제품이나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는 게 아닌가 싶어요.

못생긴 것을 아름답게 바꿔야 할까?

상현 궁금한 질문이 있어요.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이러한 못생긴 것들을 아름답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국한 전혀 아니죠.

동동 저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강제적이고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어떤 하나의 정책에 의해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미감이라는 것은 공동체의 의식 수준이 향상되면서 같이 진화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하루아침에 ‘간판 다 못생겼으니까 통일해!’라고 해선 안 되는거죠. 건물이나 간판 같은 것들은 다 사유재산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각자의 재산과 의사결정을 통제할 수는 없어요. 개개인의 미감이 진화할수록, 공동체 전체의 미감도 향상된다고 생각해요.

국한 어쩌면 저는 이게 한국의 문화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들이 못생겨서 싫다기보다는 다 너무 비슷하고 똑같이 생겨서 싫은 것 같아요.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으로 된 자기주장이 강한 간판들이나 어디 해안가에 놔두는 의미 없는 조형물들은 다 너무 똑같이 생겼어요.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이걸 바꿔야 돼!’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거에요. ‘우리 눈에 못생겼으니 바꿔야 돼!’, 이건 폭력적이기도 하고요. 그것보다는,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다만 도시 경관에 엄청 신경 써서 규칙을 정해둔 지역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일본의 교토 같은 경우는 간판의 색이 다 정해져 있죠. 눈에 띄는 색을 못 쓰게 법으로 검은색, 회색, 갈색으로 제한했어요. 이런 식으로 자연과 도시 경관이 어우러지게 규칙을 정하는 경우도 있네요.

동동 일본은 개별 건물 샤시 색이 법적으로 다 똑같아야 해서, 샤시도 맘대로 못 바꾼다고 들었어요.

국한 그건 좀 이상하기도 하네요.

상현 문화와 법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면, 문화가 점진적으로 바뀌어서 법을 바뀌는 방향도 있지만 법이 문화를 바꾸는 측면도 이야기해 볼 수 있겠어요.

국한 한국의 경우에도 간판 법이 바뀌었어요. 원래 네모난 간판만 사용했는데, 어느 순간 법으로 글씨를 입체적으로 딴 간판만 가능하게 바뀌었어요. 간판이 건물을 전부 감싸서 법으로 정해진 거라고 해요.

상현 그런 식으로 법이 개정되었다는 게 신기하네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회의 의식 수준이 점차 변하고, 그 변화가 미적 가치와 관련된 법에 영향을 주는 방식이 있겠어요. 동시에 결정권자들이 먼저 법을 개정해 사회적 의식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동성혼 법제화나 차별금지법, 동반자 법처럼요. 의식 변화가 생겨나면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고, 또 그 논의가 실제로 법제화되었을 때, 다시 사람들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고요. 문화와 법은 계속 상호작용을 하죠. 특히 한국 사회를 보면 생각보다 법이 개정되었을 때 새로운 기준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동동 시각 분야는 인권 분야와는 또 다른 이야기 같기도 해요. 인권의 경우는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만, 시각 문화라는 것은 너무 주관적이기 때문에 어느 한 방향을 정해놓고 사회가 다 같이 그렇게 가자라고 하기 다소 어려운 경향이 있어요. 예를 들어 청계천을 복원했을 때 철물점 간판들이 너무 중구난방이어서, 지자체에서 ‘청계천 간판 정비 사업’이라는 것을 진행했어요. 간판 형식을 하나로 다 통일했죠. 당시에는 간판을 통일해서 깔끔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채로움이 사라진 것 같다는 평가도 있어요. 행정이 관여해서 더 안 좋아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하죠. 사실 시각 영역에서는 모든 게 주관적인 것이긴 해요. 누구는 좋아졌다고 하고, 누구는 안 좋아졌다고 하는 거죠.

상현 동동님의 경우는 못생긴 것들을 바꾸면 좋겠지만 이를 법으로 강제하긴 어렵다는 의견이네요. 국한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획일화된 것의 못생김과 못생김의 다양성

국한 저한테는 대중적으로 말하는 못생긴 것들이 소중해요. 그것들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못생겼다고 지워버리는 것은, 예를 들면, 퀴어를 더럽다고 치워버리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소수자들을 치워버리고 지워버리는 것처럼요.

동동 저도 강제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면 우리가 못생겼다고 하는 일례로, 관광지마다 획일화된 조형물은 오히려 다양성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것들을 행적적으로 한 번에 금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해당 관광지가 관광지만의 특색을 개발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면 더 개성이 있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을 통해 다양성과 창의성에 관한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방향으로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는 너무 다양성이 부족한 사회라 지금의 결과가 나오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국한 완전 동의해요. 어떤 관광지에 가든 다 비슷하죠.

동동 프랜차이즈에 대한 로열티가 너무 강하고, 어디를 가나 올리브 영과 스타벅스가 있어요. 저는 이게 못생김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현 대중음악에 있어선 케이팝 음악이 모두 비슷하게 제작되는 흐름도 다양성이 부족한 예시 같아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국한 케이팝은 하나의 스타일인 것이고, 다양성이 부족한 것은 사람들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저도 케이팝을 좋아하고 그들이 만드는 결과물들을 사랑해요. 다만, 한국의 문제는 그걸 다 똑같이 따라 하려고 해요. 모두가 똑같이 입고, 모두가 똑같이 생기기 위해서 노력하고, 모두가 TV에 나온 사람들처럼 되기 위해 살을 빼고, 운동하고… 저는 그 스타일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다양성이 없어지는 것과, 자본과 얽혀 일반인들에게까지 획일적인 모습을 강요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과는 다르게 생겼으면 못생겼다고 말하고 배제하죠.

동동 일종의 게으름 같아요. 다른 사람이 멋있어 보이는데, 나는 내 안의 원석을 어떻게 갈고 닦아야 할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똑같이 하려고만 하는 그 게으름과 나태함, 바로 그것이 못생김이라고 생각해요.

국한 존나 별로죠. 하지만 그 마음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다르게 생긴 사람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다른 모습으로 사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남들과 똑같은 머리를 하고 똑같은 옷을 고르는 선택에는 분명 사회적 압박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동동 케이팝 자체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온 캐릭터가 시각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무조건 답습하려고 하고, 하나가 떴다 하면 모두가 따라 하는 마인드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역사적으로 한국이 침략을 많이 당하고 전쟁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몰라도, 무언가 오래 갈고 닦고 보존하려는 경향이 없는 것 같아요. 고유의 문화나 스타일에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개발하려는 마인드가 있어야 하는데, 단타로 치고 빠지려는 생각. 이런 풍토가 문화를 성숙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국한 어쩌면 자본주의적 흐름이랑 연결되어 있는 것 같네요.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는 제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찾으려면 한국에서는 찾기가 어려워서 빈티지 샵을 뒤져야 해요. 한국은 어떤 스타일이 유행하면 모든 브랜드에서 그 비슷한 옷을 팔고, 그 유행이 끝나면 그 스타일의 옷을 더 이상 구할 수가 없어요. 제가 경량 패딩을 원래 좋아했는데, 요즘 경량 패딩이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어요. 이 유행이 끝난 뒤에는 저는 그냥 유행 지난 옷을 입는 사람이 될 거예요.

상현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유행하고, 또 금세 유행이 지날 때 두 분은 어떻게 대처하세요?

동동 저는 빠르게 소비하고 파는 편이에요. 많은 사람들과 똑같은 옷을 입으면, 의도치 않게 유행에 편승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으니까 다른 걸 사야겠다 하고 팔아요. 저 같은 경우는 이렇게 빨리 전환하는 것 같긴 해요.

국한 저는 그냥 입는 편이에요. 내가 원래 좋아했으니까. 다만 한편으로는 지금 저는 예쁜 경량 패딩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행복하지만, 이 유행이 끝나면 한국에서 예쁜 경량 패딩을 쉽게 구할 수 없겠네… 이런 생각이 들면 시무룩해지기도 하네요.

럭셔리, 희소한 것의 아름다움

상현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거네요. 여기서 ‘럭셔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럭셔리는 접근 불가능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하죠. 예를 들어 과거에 서양에서 동양의 물건들이 구하기 어려우니 오리엔탈적인 것으로서 럭셔리이 상품이 된 것처럼요. 지금의 하이엔드 브랜드 제품은 구하기 어렵잖아요. 소수의 사람들만 가질 수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럭셔리를 추구해야 할까요? 이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국한 저는 럭셔리라고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비싸니까 재질이 좋을 순 있죠. 그렇지만 럭셔리 브랜드들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어요. 그 스타일이 저한텐 좀 느끼하게 다가와요. 그리고 그런 옷들은 불편하고 관리도 까다로워서 사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저는 의복에서는 편한 것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동동 아, 아까 못생긴 게 게으름과 나태함의 태도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저는 럭셔리에서 희소성은 하나의 요소이긴 하지만 완전히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비싸지 않고, 덜 알려진 것이라 해도 창의성에 대한 고민이 많이 느껴지는 제품은 럭셔리하다고 느껴요. 그런데 일부 럭셔리 브랜드가 고민 없이 이름만 가지고 로고플레이를 하고 대량으로 찍어내면, 아무리 비싸다고 하더라도 저는 갖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희소성도 소비심리에 영향을 미치지만, 디자이너로서 제가 생각하는 럭셔리는 ‘고민의 가치’인 것 같아요.

상현 그렇지만 여전히 럭셔리는 부유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나요?

동동 그렇죠. 그렇지만, 브랜드마다 럭셔리 브랜드가 된 과정은 다 다르겠지만, 하이앤드를 처음부터 지향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처음엔 디자인이나 기능에 있어 차별점이 있었고, 그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일단 유명해지고, 제작 공정이 까다롭다면 가격이 오르고, 그러다 보니 럭셔리가 되는 거죠. 그래서 무조건 모든 럭셔리 브랜드들이 태생부터 계층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순 없는 것 같아요. 현대에 와서는 상품을 그렇게 마케팅하는 것이죠. 계층과 관련된 소비심리를 자극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티지, 그러니까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었던 철학을 잊지 않고 전개해 나가는 브랜드가 좀 더 호감이 가는 것 같아요. 명성에만 젖어서 계속 똑같은 것을 생산하는 그런 브랜드 말고요.

상현 어떤 창의성과 장인정신, 게으름에 반대되는 사려 깊은 고민이 어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그것에서 가치를 느낀다고 볼 수 있겠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꼭 이러한 가치들이 희소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려 깊은 고민과 노력, 창의성과 같은 것을 향유하려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에 닿아 있을 수도 있겠어요.

국한 그렇죠. 다만 가격을 계속해서 올리고, 닿을 수 없는 계층을 상정한 캠페인을 만들어 이걸 입어야 너도 나처럼 될 수 있을 거야 하는 방식은 좀 문제인 것 같아요.

상현 결과물의 가치와 별개로 이를 이용해서 마케팅과 유통에 단계에서 생기는 문제네요.

동동 어쩌면 이런 현상들이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어요. 가격이 저렴해 누구나 살 수 있어도 수량이 한정되면, 결과적으로는 가격이 높게 형성되기도 하거든요. 이런 경우 리셀러들이 그 이익을 챙기기도 하죠. 럭셔리한 상품이 아니라도, 브랜드가 자체적으로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이 경우 그 상품을 찾는 사람들의 수요가 많으면 프리미엄이 붙어 리셀돼요. 가치가 만들어지고 나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시장의 흐름으로도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못생김을 추구하는 미학: 비정상적인 것, 퀴어, 소수자성, 계급

상현 럭셔리와는 반대로 못생김을 추구하는 미학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요? 아까 이야기했던 이반지하 작가님의 퀴어적 실천의 사례나, 하위주체들의 미감에 대해서요.

국한 예를 들어서, 기관에서 이반지하님이 뭔가 하는데, 그 포스터가 못생긴 미를 담고 있다, 이건 저에겐 큰 의미로 다가오는 일종의 투쟁이라고 생각해요. 예쁜 것들, 깔끔한 것들만 있어야 하는 곳에 못생긴 것들을 들이미는 일은 그 사람, 그 작가의 태도가 반영된 결과물이죠. 제가 추구하는 미와 퀴어성도 이것과 비슷해요. 거창하게 말하면 투쟁인 거죠.

상현 근데 진짜 못생기고, 의도되지 않은 경우도 있지 않나요.

국한 그건 우리가 퀴어라서, 소수자라서 어쩔 수 없을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돈 없고, 못 배웠고, 가난하고 “못생긴” 소수자들이 보는 시각물과, 부자 엘리트들이 보는 것은 다르니까요. 저는 이런 질 낮은 것들, 질 낮은 디자인들이 어떤 소수자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계속 말씀드렸듯이 저는 그것들이 되게 소중하다고 느껴요. 어쨌든 그 못생긴 것들은 그걸 만든 사람이 닿아 있는 사람의 계급, 소수자성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소수자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포스터가 너무 엘리트적이고, 너무 화려하고, 1 세계 백인적인 건 어쩌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상현 그러네요. 근데, 이 문제가 소수자성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서 소수자로서 기관에 들어가 제도를 이상한 방식으로 변형시키고자 했을 때, 어느 정도 그 깔끔함을 입어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국한 그렇죠.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추의 미를 연출할 수 있는 실력까지도 어쩌면 조금은 엘리트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런 미학을 다루는 사람들이 실제론 좋은 학교들을 나온 경우도 많으니까요. 어떤 고뇌, 생각, 어떤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요.

상현 어떻게 보면, 탑다운적인 거라고 할 수 있네요. 아이러니한 것이 디자이너도 그렇고, 미를 다루는 예술가의 작업이라는 것이 이 같은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과거에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이러한 분야에서 기본적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못생김의 미와 의미를 가지고 자신의 직업적인 정체성을 추구하니까요. 어쩌면 예술이 엘리트주의적인 기반을 배경 삼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까요? 대중문화, 하위문화, 일전에 말씀하신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자연발생적인 것의 민주성과 이러한 못생김의 미학을 다루는 예술가의 작업 사이에 긴장이 있는 것 같아요. 추의 미가 정말 민주적이라고 하기에는 기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동동 저는 순수한 잣대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결정을 내리는 개인의 배경과 성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배경을 의식하고 중립적으로 뭔가를 하려는 의지가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하지, 결과가 완전히 순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국한 저도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아름다움을 가지고 싶어 하고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 뭔가 만들 때마다 항상 죄책감을 가져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세상을 아름답게만 만드는 거 그게 정말 좋은 일일까? 자본의 흐름과 계급과 연결되어서 생각할 때 더 그렇죠. 그래서 어떻게 균열을 낼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해요.

상현 되게 입체적이네요.

동동 다시 못생김의 주제로 돌아가면, 시각문화에 무언가 옳고 그름의 기준을 만들어 컨트롤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고도 제한법 같은 것도 있잖아요. 도시의 경관과 관련된, 그런 정도의 규제나 법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상현 이 문제는 정치나 제도와도 연관이 있네요. 제도가 문화에 어떻게 개입할지에 질문하며, 자유방임과 규제를 강화하는 양쪽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죠. 정치와 제도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아까 이야기가 나왔던, 한국의 유산과 역사, 현재의 흐름을 고려해 제도를 정비하고, 그 제도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신중히 논의해 결정해야 할 것 같아요. 이러한 고민이 일종의 아름다움일 수도 있겠어요.

영포티

상현 마지막으로 영포티 사례를 이야기해 볼 까요. 영포티 브랜드로 낙인이 찍힌 제품들과 지브리 프로필 사진도 순식간에 멋지고 힙한 것에서 못생긴 것으로 빠르게 바뀌었어요.

동동 저도 영포티에 관해서 좀 알아봤는데, 그들의 패션 스타일이나 브랜드와 같은 시각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영포티가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어린 세대들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가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근데 그런 태도를 띠는 사람들이 어쨌든 다 같은 세대다 보니, 비슷한 패션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이미지와 스타일을 가진 사람에 대한 편견이 생겼죠. 그러니까 이 경우도 결국 시각적인 것이 먼저가 아니라, 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이런 혐오 표현이 생겨난 거예요.

국한 맞아요. 저는 그들의 스타일이나,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일도 그것 자체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동동 맞아요. 그건 그냥 개인의 자유고, 못생겨 보이지도 않아요. 뭘 입든 사람이 권력을 남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면 다 못생겨 보일 거예요.

상현 그런데 이렇게 한 세대가 입는 패션이 특정화된다는 사실은, 아까 말했던 한국에서의 획일화된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네요.

동동 그렇죠. 만약에 그 영포티들의 행동은 비슷해도 스타일이 다양했다면 이미지적인 밈화가 어렵지 않았을까 싶어요.

마무리하며: 시각적인 것 너머의 못남, 못생김의 소중함

상현 준비된 질문은 이제 다 다룬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오늘 인터뷰의 소감을 나눠주시면 좋겠어요.

동동 오늘의 대화를 할수록 못생김은 시각문화, 그러니까 비주얼적인 것의 문제가 아니라, 이면에 있는 고민을 하지 않는 게으름과 나태함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어요. 우리가 ‘못생김’이라고 단어로 명명해서 마치 시각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 사실은 그 이면의 태도를 싫어하는 것이고, 그걸 못생김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사실 못생긴 건 ‘생김’이 아니다. 그냥 ‘못난 것’에 가깝다. 라고 말하고 싶네요.

국한 저는 못생김과 예쁜 것을 나누는 것, 그 차이는 제도와 정상성과 자본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관점에서 전 한국의 획일화된 스타일을 못생겼다고 생각하고요. 왜냐하면 저는 전혀 그곳에 속할 수 없으니까요. 저 또한 소수자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그게 저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니까, 저에게 그런 잣대들이 가끔은 되게 위협적으로 다가오기도 해요. 그래서 전 ‘못생김도 소중하다. 아름다움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상현 국한씨가 말하는 못생김은 시각적인 못생김을 말씀하시는 거죠?

국한 맞아요. 시각적인 차원에서 못생김과 아름다움을 나누는 기준 자체에 대해서 사람들이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못생김은 동동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사실 못생긴 것이 아니거든요. 못생긴 건 없거든요, 진짜.

동동 맞아요. 사람들이 사실 그 이면에 있는 태도가 싫은 건데, 그걸 그냥 못생겼다고 하는 것 같아요. 영포티도 그 사람들의 행동과 마인드가 싫은 건데, 결국 그 이미지를 싫어하게 되는 것이죠. 못생김이라는 건 일종의 환각인 거죠. 그리고 정말 시각 안에서의 못생김이라는 것은 너무 주관적이기 때문에 뭐가 못생기고 뭐가 예쁜 거라는 것은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상현 개개인이 결정할 순 있을까요?

국한 개인의 취향은 있겠죠. 그리고 대중적으로 못생겼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 못생김의 미학을 취해서 이용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상현 두 분의 말을 이어보자면, 사실 못생김은 시각적인 것이 아니고 그 이면에 있는 못난 태도나, 획일화,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흉내내는 나태함이다. 다면 시각적인 것에서 못생기고 아름다움을 나누는 기준은 제도와 정상성의 문제, 자본의 흐름과 결부되어 있다. 이를 절대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못생김과 아름다움이 나뉘는 기준을 알아야 하고, 그 안에서 못생김 자체도 문화의 소중한 자원이자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영역일수 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국한 일반적으로 못생긴 것을 말할 때 비정상적인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적으로 못생겼다고 하는 건 비정상적인 것이고 바꾸고 고쳐야 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크잖아요. 이렇게 하면 더 “나아질 거다”라는 식으로요. 어쨌든 다양성이 무시되는 사회에서는 그런 것들이 되게 소중하죠.

상현 감사합니다. 예술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아름다움, 사려 깊은 태도에 대해 두 분이 각기 다른 시각에서, 때론 한 방향을 바라보며 말씀해 주셔서, 이번 인터뷰가 큰 의미가 있었어요. 한번 잘 정리해서 공유 드리겠습니다. 두 분이 멋져 보일 수 있게 잘 편집해 볼게요.(웃음)

국한 저는 못생기게 해주세요. 못생기게. 못생긴 방식으로 멋있게요.

상현 인터뷰는 시각적으로 정리하는게 아니라서요.(웃음)

국한 그럼 못생긴 단어 써주세요. ‘존나’, ‘썅’ 이런 거요.

동동 저는 그런 거 쓰지 말아 주세요.(웃음)

상현 알겠습니다.(웃음) 그럼,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해요.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