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휘말리기:
전시에 돌봄을 꿰는 사람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박예원, 이다연 큐레이터 인터뷰

 

인터뷰 참여_ 박예원, 이다연
_ 하은빈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의 개막식 날, 눈을 감고 전시장을 돌아보았다. 유기적으로 짜인 벽에는 만지며 따라갈 수 있도록 제작된 여러 높이의 촉감 안내선이 일정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선을 쓸며 따라가다 보면 구획된 영역마다 벽의 감촉이 달라졌으므로 작품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선의 질감이 바뀔 때마다 멈춰서서 벽면마다 부착된 촉감 타일을 한참 쓰다듬었다. 각각의 작품 감상에 필요한 감각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장치였지만, 동시에 그 감각의 일부가 없이도 얼마든지 이 공간에 머무를 수 있다고 일러주는 것이기도 했다.

눈을 뜨고 다시 한번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감각 키트 가방’을 등에 멘 어린이 관람객이 엄정순 작가의 〈코 없는 코끼리〉의 다리를 꼭 껴안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관람객이 송예슬 작가의 〈아슬아슬〉을 목에 건 채로 다른 관람객과 평형을 유지하며 ‘걷고’ 있었다. 〈안녕히 엉키기〉 안에 삼삼오오 드러누운 관람객들이 마치 밤하늘을 보듯 천장에 영사되는 몸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만져선 안 되거나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게 가로막힌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작품과 관람자의 거리가 무척 가까웠다는 뜻이다. 이 공간의 모든 요소가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을 보드랍게 감싸안는 것 같았다.

그런 부드러운 환대의 감각은 내가 참여작가의 일원으로 이 전시의 작품을 만드는 내내 박예원, 이다연 큐레이터들에게서 받은 느낌이기도 하다. 지난 8월 20일,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를 기획하고 꾸린 두 큐레이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에 이어 모두미술공간 순회전시의 종료 또한 앞두고 있었는지라 두 사람의 얼굴 위에는 적지 않은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지독히도 고생한 두 사람을 위한 공치사의 시간이 되기를 내심 바라기도 했지만, 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음처럼 되기는 어렵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놀랍도록 엄살이 없는 두 사람의 입에서는 계속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참여 작가, 디자이너, 워크숍 참여자, 전시 공간 운영 요원들… 이들의 몸에는 이미 아주 많은 타인들이 깃들어 있었다.

 

온몸으로 직접 부딪는 사람들

은빈 두 분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예원 안녕하세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전시 기획을 하고 있는 박예원입니다.

다연 뭐야, 이렇게 짧게 해도 되는 거예요? (웃음) 저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 기획 같이 하고 있는 이다연입니다.

은빈 저는 예원 님, 다연 님 두 큐레이터님들께서 기획하고 만드신 전시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에 참여 작가로 함께 한 하은빈입니다. 전시를 함께 만드는 내내 정말 기억에 남았던 게 두 분의 강인한 체력과 놀라운 세심함, 찰떡같은 파트너십이었어요. 언제부터 함께 일하셨어요?

다연 제가 ACC에 작년 2024년 2월에 입사했어요.

은빈 정말요? 두 분 합이 너무 좋아서 저는 한 4년 되신 줄 알았어요.

다연 입사해서 처음 제가 맡은 업무가 예원 샘이랑 같이 일하는 업무들이었어요. 전시 업무도 물론 있었지만 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시설을 같이 개편하거나 하는 업무들이 많이 있었어요. 전시 공간 조명 공사를 한다든지 사무실과 전시관에 블라인드를 설치한다든지 하는. 작년에 처음 같이 했던 전시가 야외 전시1였는데, 그러면서 별개의 다른 행사들도 진행했거든요. 전시 야외 공간을 시민들이랑 같이 달려보기도 하고, 근처 대학교 무용 전공 학생들이 공간, 작품과 조응하며 움직이는 전시 폐막제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예원 또 어린이나 예비 교육인들 대상으로 작품을 어떻게 서로가 해석할 수 있는지 함께 이야기하는 대화형 감상 프로그램이랄지, 또 시각장애인 관람객 터치 투어, 청각장애인 관람객 투어… 이런 식으로 저희가 몸으로 뛰어야 하는 것들을 많이 했어요. 전시 자체가 야외에서 이루어지다 보니까 태풍이 불면 작품이 바람에 날아간 적도 있고, 그래서 날아가는 거 붙들기도 하고, 아침마다 비둘기 똥 치우러 다니고, 낙엽 치우고, 그러면서 합이 좀 강해지지 않았나.

다연 기억에 남는 게, 전시를 한 달 반쯤 앞두고 예원샘 발에 금이 간 거예요. 때마침 ACC에 어쩌다가 남는 휠체어가 생겨서 그걸 타고 다녔거든요. 그때 같이 다니면서 ACC가 휠체어를 타고서는 혼자 다니기 어려운 공간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문들이 주로 손으로 밀어야지만 열리고, 카드키 같은 것도 위쪽에 있어서 손에 닿지 않고. 밖이 또 생각보다 경사가 많더라고요. 의도한 건 아닌데 그때 같이 다니면서 전당의 배리어도 많이 느끼게 되었어요. 힘든 때가 있었는데, 저희가 너무 힘드니까 웃고 다녔어요.

예원 맞아. 다들 제가 장난치거나 아니면 공부하는 줄 알았대요.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아보는 줄 알았다고. 진짜 다친 건데…

다연 그리고 작년에 전시 말고 있었던 제일 큰 규모의 행사가 배리어프리 영화제2였어요. 와상휠체어 이용하시는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 참여자분들이 100명 넘게 저희 극장에 오셔서 영화를 관람한 행사였는데 그때 고민이 정말 많았죠.

은빈 능력치가 많이 올라가셨겠는데요.

다연 사실 저는 예원 샘이나 은빈 님처럼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던 것들을 책으로 배웠어요. 그때까지도 배리어프리 개념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지 주변에 이런 공부를 하거나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지 않기도 하고, 이런 걸 하는 곳이 없다 보니 배울 기회가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예원 샘이랑 행사를 준비하고 접근성 스터디3도 하면서 성수 님, 근영 님이 쓰신 책4을 접하게 됐고 거기서 많이 배웠어요. 진짜 하면 안 되는 것들부터 빠르게 먼저 습득하고, 어떤 것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이지 책 본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고요. 어렵다고 느낀 순간들이 많았는데 예원 샘과 서로 의지하면서 친해졌고, 일하는 스타일도 조금 더 빠르게 예측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왼쪽부터 이다연, 박예원 큐레이터.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박선호 스튜디오(박선호, 손현욱, 박단비) 촬영 / 박예원, 이다연 제공

 

구슬을 꿰는 마음

은빈 저희가 처음 만난 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한 워크숍 때였지요.5 저는 처음에 큐레이터분들이 워크숍에 오신다고 해서 겁도 좀 먹었어요. 참여자의 마인드보다는 비평적인 관점으로 거리를 두고서, 이 워크숍을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태도로 있으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온몸으로 또 진심으로 참여하시는 게 느껴졌고, 전시 제안도 덜컥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지금이야 작품이 나왔으니 망정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워크숍 경험을 전시에 어떻게 녹일지 저희에게 아무런 상이 없었잖아요. 무엇보다도 저희 셋 중에는 시각예술 작가가 없었고요.6 안 불안하셨어요?

예원 워크숍 경험을 관람객이 똑같이 느낄 수야 없더라도, 어렴풋이라도 그 장이 되어주는 걸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예전에 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하신 작업 영상을 봤었는데 우리가 가서 직접 겪어봐야 더 명확할 것 같다 싶어서 다연 샘이랑 서울에 가서 3일간 워크숍에 참여했고요. 하면서 ‘아 이제 뭔지 알겠다’ 싶었고, 이 경험의 일부를 옮기되 워크숍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뭔가 공연과 전시의 경계가 있는 작품을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전당에 4년 있었는데, 4년 내내 창/제작하면서 한 번도 결과물에 대해서 불안했던 적이 없어요. 저는 사실 전시를 기획하면서 이미 다 그려두거든요. 자신이 있어서 시작한 거고 작가님들이랑 될 때까지 할 거니까요.

은빈 저 그 얘기 듣고 싶어요. 예원 님 보석함 얘기… 처음 미팅할 때 예원 님이 그런 표현을 쓰셨잖아요. 이 전시의 작가들은 다 작가님이 오래 모아온 보석함이고, 이제 그 보석함을 열 때가 왔다고요. 보석이라는 비유가 저는 좋았는데 왜냐하면, 뭐랄까요. 정말로 장애와 그것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진짜로 제게는 반짝이는 무엇이고 제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장애는 윤리의 문제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더 자주 미적인 무엇이에요. 남의 눈에는 거친 돌이겠지만 저한테는 보석인 거죠. 예원 님의 보석함은 얼마나 된 것인가요?

예원 진짜 오래됐어요. 한 7~8년 된 것 같아요. 다들 제게 왜 시작했냐는 질문을 진짜 많이 하시는데 이유가 없어요. 그냥 아름답기 때문이고, 제게 강한 자극과 영감을 줘요. 계속 지치지 않는 이유도 그것 때문인 것 같아요.

이번에 전시 만들면서, 또 당사자 친구들도 많이 생기면서 나도 좀 액티비즘적인 마인드를 가질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도 처음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원래는 제가 좋은 거 하는 사람, 아름다운 걸 추구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저 미끄러운 아름다움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것들에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하는 일은 이 보석 구슬들을 꿰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모양을 꿰는가에 따라 다른 게 만들어지는 걸 보는 게 좋아요. 제 일은 제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들도 아름답다고 느낄 때까지 계속 피력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은빈 그게 뭘까요. 정말… 어떤 아름다움일까요.

예원 그러니까요. 왜 막 계속 저를 끌고 갈까요? 최근에 김도현 선생님 말씀이 기억에 남았는데, ‘휘말린다’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나는 너와 함께 사랑에 휘말리는데, 그 휘말림은 수동도 능동도 아닌 ‘중동의’ 과정, ‘중동태’의 과정이라고요.7 저의 상황과 비슷한 말인 것 같아요. 나의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그때 만났었던 사건들과 같이 그냥 휘말려서 빠져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정확하게 내가 이걸 왜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할 수 없는… 물론 당연해서 하는 일이기도 하죠, 당위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만 그 외에 정말 다른 아름다움이 많다는 걸 다른 사람들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은빈 저희 전시로 많이 말씀하신 것도 알아요. 아까 조금 액티비스트가 될 필요도 있다고 느끼셨다고 했는데, 저는 이 전시 자체가 액션이었다고도 생각해요. 가장 미학적인 차원에서 설득할 때 가장 정치적인 힘을 가질 수도 있다는 맥락에서요.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 전시작들을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담은 이미지.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박선호 스튜디오(박선호, 손현욱, 박단비) 촬영

 

초대하는 시간, 다가가는 공간

은빈 저 사실… ACC 전시 오프닝 날 전시장 처음 둘러보고 울었거든요. 자기가 참여한 전시 보고 울다니 진짜 꼴불견이죠. (웃음) 사실 개개의 작품도 작품이지만 전시장의 총체적인 구성과 환경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화이트큐브가 자주 어려워요. 위축되고요. 항상 내가 작품을 보러 가는 것, 그러니까 내가 작품에 다가가는 것이고 작품은 내게 오지 않는다, 작품은 내게 마음을 잘 열어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리고 그게 사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관람객의 마음이라고도 생각해요.

한편 이 전시에서는 뭐랄까, 작품들이 나한테 먼저 뚜벅뚜벅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전시의 모든 작품과 공간의 구획, 질감과 디테일에서요.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접근성이란 그야말로 초대의 감각이구나… 관람객의 몸을 이리로 오게 만드는 게 아니라 작품이 관람객에게 다가가는 거구나…

이 전시에 많은 세부 사항이 있지만, 특히 저는 공간 자체에서 그런 환대의 감각을 크게 받았던 듯해요. 공간을 구성하신 ‘석운동’ 팀과는 어떤 대화를 많이 나누셨는지, 이 전시의 환경이 되는 모든 선택들 가운데 무엇에 가장 방점을 찍으셨는지 듣고 싶어요.

예원 전시가 올라간 6관은 한 3~4년 전부터 잡아뒀어요. 저희 전당에서 제일 작은 전시 공간이지만, 무조건 여기서 하고 싶었어요. 유일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딘가로 안 가도 되고 전당으로 왔을 때 제일 먼저 올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그리고 두 번째 이유가 있다면 이곳이 전당에 있는 유일한 화이트 큐브라는 점이었어요. 관람객분들께서 더러 화이트 큐브를 어려워하기도 하시지만 기본적으로는 미술관에 왔다는 느낌을 주는 공간이잖아요. 그 공간에서 가장 화이트 큐브답지 않은 전시를 하고 싶었어요.

전에 《틈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8라는 전시를 한 적이 있어요. 공연장과 전시관을 잇는 하나의 복도 공간, 계단 공간을 작품과 연결해 주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였고 당시에 작품을 감상하면서 틈 안에서 쉴 수도 있게끔 하려고 했어요. 걷다가 헤맬 수도 있고 누군가와 행진할 수도 있고 그대로 멈출 수도 있고, 이런 방식으로 단순히 어떤 위치를 향해 걸어가는 게 전부가 아닌 걷기의 방식들을 고안하는 것, 작품 내지는 공간과 관람자가 목적지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방법들을 많이 고민했었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도 그런 점에서 석운동 김지원 실장님9의 역할이 제일 중요했어요.

두 가지를 강하게 피력했어요. 하나는 모두미술공간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가벽이 가구화되었으면 좋겠다.10 두 번째는 쓰임이 없는 벽이 없어야 한다. 작품을 걸 때 쓰는 벽 외에는 장식용 벽이 없어야 하고 어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겨난 벽이 다른 작품의 지지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이 전시의 주제와 가장 잘 맞을 것 같다.

그 외에는 작가님들의 의견을 잘 수렴하려고 노력했고요. 6관의 경우에는 코끼리로 시작하는 디아스포라의 역사로 시작해 그 외로운 길을 함께 걸으며 마지막에 함께 엉키는 순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공간의 조도가 처음에는 밝았다가 점점 어두워져서 마지막 엉키기 작품에서는 관람객들이 좀 머물다 갈 수 있도록 하려고 했어요. 한편 모두미술공간에서는 두 개의 입구에 각각 코끼리와 공기 조각을 두어서 어느 뱡향으로 들어오든 간에 시각 중심적인 것을 해체하는 맥락을 읽을 수 있도록 했고, 입구에서부터 엉키기 무대가 잘 보일 수 있게 배치했고요. 들어서면 광활한 무대가 있고 누구나 그 무대에 뛰어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었잖아요. 그건 모두미술공간에서 조금 더 잘 구현된 것 같아요.

제가 계속 공부하는 것은 접근성 공부라기보다도 개인화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각자가 각자의 고유한 몸으로 전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가 다양한 방식으로 열리고 읽힐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그러한 면에서 제일 마음을 열어주는 건 공간인 것 같고요.

은빈 6관이 ACC 공간 중 가장 작다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나요. 전시를 위한 사전 워크숍을 하면서도 공간이 크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그래서 이렇게 많은 작품이 들어올 수 있을까 의문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전시가 꾸려지니까 작은지 모르겠더라고요. 효율적으로 구성된 공간의 힘이 크구나 싶었어요.

 

송예슬, 〈아슬아슬〉, 2025, 인터랙티브 설치, 가변크기. 헤드폰을 착용하고 장대의 양끝을 잡은 참여자들은 높이가 변화하는 플랫폼 위에서 장대의 수평을 맞추며 걸어야 한다. 헤드폰의 노이즈캔슬링 기능으로 인해 언어적 소통의 가능성이 차단되기 때문에 변화하는 사운드와 불빛에 의지하여 서로의 움직임을 조율해야 한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박선호 스튜디오(박선호, 손현욱, 박단비) 촬영

 

아야 모모세, 〈녹는점〉, 2025, 참여형 설치 작품, 가변크기. 2023년 아타미 아트 그랜트에서 초연. 작은 바처럼 꾸며진 카운터 공간에서 퍼포머가 따뜻하게 데워진 물 한 잔을 관람자에게 건네준다. 이 물은 실시간으로 전송된 작가의 체온과 같은 온도의 물로서, 참여자는 타인의 체온을 마시는 경험을 통해 누군가와 모종의 접촉을 경험한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박선호 스튜디오(박선호, 손현욱, 박단비) 촬영

 

다정의 디테일

은빈 이렇게 공간의 큰 구성과 구획이 주는 힘이 있었다면, 한편으로 이 사이사이를 채우고 메꾸는 디테일들에서도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던 것 같은데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안 보일 정말 작은 부분에까지 관심과 사랑이 뻗쳐있다는 걸 알 수 있어서 그랬어요. 특히 ‘아인투아인(Ayinto Ayin)’과의 협업의 결과물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어린이를 위한 감각 키트 가방이 정말 좋았고, 한 컷 한 컷 일일이 다르게 질감 처리를 한 촉각책도 기억에 남아요.

예원 아인투아인의 박현일 대표11와는 6년 정도 알아 왔는데, 작업을 시작한 건 작년부터예요. 현일은 미감이 아주 좋고, 늘 디자인의 영역에서 표준을 재정의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온, 비장애중심적인 표준을 떠나 범용적인 디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온 친구예요. 오래 지켜만 보다가 작년에 구본창 작가 전시12 때 다짜고짜 촉각 책을 만들어야겠다 싶은 거예요.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장 시각장애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매체인 것 같았거든요. 이 실험을 가장 매끄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떠올라서 현일에게 전화했어요. 당장 일을 할 준비를 하자. 우리는 사진으로 촉각책을 만들 거야. 현일이 그 얘기를 듣고 ‘때가 됐나 보다’ 생각했대요.

은빈 그냥 일하는 관계에서는 이런 결과물이 안 나올 것 같아요. 관계적으로도 정말 친밀하고 서로 많은 즐거움을 나눌 수 있어야만 이렇게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현일 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예원 님께 들들 볶였다고 하셨던 것도 기억나고요. 작업 과정이 어떠셨어요?

예원 현일을 처음에 봤을 때 놀이를 디자인하고 싶어 하는 게 보였어요. 그런데 저희 전당은 어린이 문화원이 있어서 어린이 관람객이 저희 전시실에 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 한편으로 전당에서 가장 많은 고객층을 차지하는 이들이 또 어린이들이기도 해요. 그래서 놀이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북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배낭 탐험가!〉13라는 걸 했었거든요. 키트랑은 조금 다르지만, 가방을 가지고 각자 자기만의 놀이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이걸 좀 더 보완해서, 전시장에서 하지 말라는 행동들을 다 해볼 수 있는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가님들의 작품 리스트들을 보내주면서 여기서 추출할 수 있는 감각들을 담은 감각 키트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이런 모양의 가방이었으면 좋겠고 이런 이런 감각들이 담겼으면 좋겠다, 하는 큰 그림을 주었죠. 이후에 나온 건 현일의 디자이너로서의 역량과 다연 샘의 디테일이 담긴 합작이에요.

은빈 키트가 다연 님과 현일 님의 합작이었군요. 다연 님은 하시면서 어떠셨어요?

다연 사실 제가 여기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명확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정리를 하면 될 작업이라고 느꼈어서요. 그래서 어느 정도 키트 구성이 완성되어 가면서도 저한테는 약간 물음표가 남아있었거든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만들어진 키트를 가지고 관람객들, 참여자들과 어떻게 하면 친절하게 만날 수 있을까? 그냥 이 가방을 그냥 보여주는 거랑 어떻게 쓰는 가방인지 설명을 해 주는 거랑은 다른 거니까요.

현일에게 이걸 왜 만들었고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를 계속 물어봤거든요? 결국 현일의 대답은 ‘답이 없는 놀잇감을 만들고 싶다’였어요. 그걸 도출해 내니까 제가 굳이 긴 글을 쓸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이것은 ACC를 찾은 어린이 참여자를 위한 키트이고 각 작품과 연결된 다섯 가지 감각을 놀이를 통해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리고 키트에는 규칙이나 정답이 없다, 이 정도로 정리되었어요.

여기까지는 왔는데, 그래도 정답이 없는 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거예요. 고민을 하다 보니… 어린이가 보통 혼자 전당에 오지는 않잖아요. 보호자랑 같이 그 키트를 볼 테니까, 보호자와 함께 볼 수 있는 가이드를 작성했어요. 작동법에 대한 가이드는 아니고 감각에 대한, 작품에 대한 힌트를 주면서 아이랑 함께 대화할 수 있도록 작성했어요. 꼭 필요한 내용만 담아서 두세 줄씩.

은빈 그렇네요. 어린이의 관람 경험은 결국 어른이 사이에서 매개해 주잖아요. 어린이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어린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그 함께 있는 사람의 역할을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루어졌네요.

다연 기본적으로는 어린이를 위해서 만들었지만 어른 관람객분들도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냥 지나치시다가도 이게 뭐지? 하고 돌아오신 분도 있고요.

은빈 저는 키트의 코끼리 나뭇조각들을 어떻게 조합해도 코끼리가 되지만 코끼리의 코만은 붙일 수 없게 되어있달지, 가방을 이루는 천이 사용자의 체온에 따라 색이 변하도록 되어 있어서 몸이 닿은 자국이 남았다가 차차 사라진달지 이런 디테일이 정말 좋았어요. 아, 키트에 대한 안내문(“우리 배낭을 타고 놀아볼까요?”)이 어린이의 눈높이에만 보이는 위치, 어른의 눈높이에서는 가려져서 안 보이는 위치에 쓰여있었던 것도요.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부분들까지도 평등하게 마음을 쓰셨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예원 그게 저는 다정함이라고 생각해요. 이용자의 시선에서 뭔가를 계속 바라보는 거, 배려가 아니라 그냥 하는 거. 그리고 저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강한 마음이 다정함인 것 같아요.

 

어린이 참여자가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의 체험형 감각 키트를 가지고 놀고 있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박선호 스튜디오(박선호, 손현욱, 박단비) 촬영

 

해미 클레멘세비츠, 〈궤도(토토포놀로지 #4)〉 2025, 사운드 설치; 스피커, 모터, 소리, 가변크기. 한글 자음 ‘ㅇ’을 떠올리게 하는 둥근 스피커를 모음 ‘ㅏ’, ‘ㅗ’, ‘ㅓ’, ‘ㅜ’를 닮은 조형들이 둘러싸고 있다. 모음들이 천천히 회전하는 가운데, 스피커에서는 네 개의 모음 소리가 각기 엇갈리며 흘러나온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박선호 스튜디오(박선호, 손현욱, 박단비) 촬영

 

돌봄의 전시, 전시의 돌봄

은빈 이 전시의 작품들 중 전시가 올라간 이후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신지 궁금해요. 특정 작품이 기억에 남는달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달지. 기획자의 입장에서든 관리자의 입장에서든, 전시가 올라가면 그냥 끝이 아니라 계속 작품을 돌보아주어야 되잖아요. 이 전시의 작품들은 특히나 참여형 작품이 많아 더 손이 많이 갔을 것 같아요.

예원 우리 전시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전시를 돌보았지만 그중에서도 다연 샘이 가장 많이 돌봤다고 생각하고요. 제 입장에서 가장 많이 돌보았고 늘 돌보고 싶은 사람들은 전시장을 운영하는 운영요원들이에요. 어떤 큐레이터들은 운영 요원들에게 작품 설명 없이 작품을 어떻게 켜고 끄는지만 설명하기도 해요. 저는 그게 너무 싫어요. 운영 요원들은 작품과 가장 가까이 있고 관람객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제일 돌봐야 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에게 미술관이 그저 일터, 즐거울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리는 게 속상해요.

그래서 늘 전시 전에 이분들과 함께 전시 투어를 돌면서 이건 이런 작품이고 이건 이런 거고 작품 설명을 하는 과정을 거쳐요. 특히 이번엔 전시 운영 팀장님께서 김원영 작가님의 팬이셨어요. 그래서 원영 작가님 어떤 책 좋아하시냐, 뭐 읽으셨냐, 먼저 가서 물어보기도 하고 은빈 작가님의 책도 선물해 드렸어요. 이 책을 읽고 나면 전시장에 오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또 달라질 것 같다는 말씀도 드렸고요. 그분의 마음이 바뀌니까 다른 분들의 마음이 조금씩 더 바뀌었어요. 처음엔 저희 전시에 인제책도 없고 안내판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너무 불안하셨대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서로 간의 질서를 지키며 즐길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도 하시고. 우리가 이 작품들을 키워내고 있다, 이런 마음가짐이 크셨어요.

또 한번은 운영요원분들께서 ‘우리는 우리가 접근성 매니저라고 생각한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예를 들어 누가 전시실에서 큰 소리로 말하면 제지하기 전에 혹시 이분들이 농인인지 아닌지를 먼저 파악하신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 관람객분들이 오셨을 때는 나서서 직접 서문을 읽어주시기도 하시고요. 그리고 저한테 맨날 고맙다고 하세요. 이런 얘기를 듣고 오는 날은 계속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제가 제일 원하는 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이 일을 하는 게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거였거든요. 제가 유일하게 돌봤던 대상들인 것 같아요. 제가 돌봄 받기도 했지만요.

은빈 이 얘기가 되게 제게 많은 울림을 주네요. 제게도 미술관에서 운영요원으로 오래 일해온 친구가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다연 님은 어떠셨어요?

다연 어떤 작품 하나만 기억에 남는 것 같지는 않고요. 모든 작품이 각각의 조각을 이루는 한 덩어리의 전시로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작품마다 에피소드가 다 있었고요. 작가님들이 순차적으로 오셔서 작품을 설치하고 가셨는데, 제가 어쩌다 보니 그 과정을 다 계속 지켜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뭔가 명확하지 않아도 대강 어떤 프로세스로 만들어진 작품인지를 이해하고는 있어서 작품에 뭔가 이상이 생겼다고 하면 바로 내려가서 들여다보게 되고. 문제가 생기면 테크니션 선생님들이랑 같이 고민하고. 그래서 모두미술공간으로 옮길 즈음에는 작품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슈를 거의 다 알고 대응할 수 있었어요.

아야 모모세 작가님의 〈녹는점〉14의 경우에는 전시 오픈할 때까지 약간 흐릿했던 것 같아요. 전시를 준비하다 보면 모든 게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 오픈할 수는 없잖아요. 특히 이 작품은 관람객이 와야만 이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는데, 우리 기관에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오고 얼마나 작품에 참여할지 잘 가늠도 안 되었고요. 정말 별의별 걸 다 생각해서 해봤거든요. 아야가 일본에서 전시했을 때는 전시 공간 안에 컵을 씻을 수 있는 싱크대가 있었대요. 저희는 없잖아요. 처음에는 그냥 막 제가 뛰어다니면서 설거지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씻고 갖다 놓고 씻고 갖다 놓고 하는데 이걸 루트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이걸 어떻게 깨끗하게 보관해야 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식기 살균 건조기까지 갖다 놓고.

은빈 사람이 그렇게 많이 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아야 모모세 작가의 〈녹는점〉을 체험하고 있는 관람자.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박선호 스튜디오(박선호, 손현욱, 박단비) 촬영

 

다연 지금에 와서는 많이 배웠고 잘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저희 사전 워크숍15 할 당시에도 돌봄과 접근성의 측면에서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이렇게 했는데 오늘 내가 한 게 괜찮은 거 맞나?’ 내 딴에는 잘 준비해서 a를 줬는데 저 사람은 a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요. 이런 생각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참여자 중 한 분이신 숙경 님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어느 공간에 가건 완벽하게 접근성이 갖춰진 곳은 없다, 그렇지만 그 공간에 갔을 때 사람들이 환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면 불편하더라도 두 번 세 번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라고요. 그때 그 말을 듣고 ‘아, 어찌 됐든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구나’ 싶었어요.

예원 과한 친절은 또 싫잖아요. 그게 또 힘든 것 같아요. 저는 항상 들었던 말이 ‘좋은 일 하시네요’예요. 너무너무 싫어요. 물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 하는 거고 함께 하는 거 너무 좋은 일이죠. 그렇지만 내가 더 잘해줘야 할 것 같고 좀 더 다정해야 될 것 같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 약간의 위계를 만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은빈 저도 그런 맥락에서 도록에 그런 글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아무도 아무에게도 미안해하지 않기로 하자’.

예원 맞아요. 미안해하지 않기로 하자. 좀 싸워가면서, 질척이고 더러워지기도 해야만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야 작가님은 이런 말도 했거든요. 서로 할퀴고 생채기 위에 새살이 돋으면서 서로 간에 또 다른 생명력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그 사람이 내게 남긴 흔적이 나에게 또 다른 생명력을 주는 것 같다고.

 

김원영᛫손나예᛫여혜진᛫이지양᛫하은빈, 〈안녕히 엉키기〉 2025, 워크숍, 현장 퍼포먼스, 설치, 3채널 영상, 7채널 음향, 가변크기. 비스듬히 기울어진 천장에는 서로 엉키고 흩어지며 구르는 다양한 몸들이 투사되고 있고, 둥근 공간을 둘러싼 스피커들에서는 제각기의 실패를 낭독하는 워크숍 참여자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관람자들은 편안히 앉거나 누워 작품을 관람하며, 천장의 몸들을 따라 몸소 굴러볼 수도 있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박선호 스튜디오(박선호, 손현욱, 박단비) 촬영

 

매끄러운 것과 돌출된 것

은빈 저는 이 전시의 ‘심리스함’이 다소 고민스럽기도 했어요. 배리어프리 요소들을 포함해 정말 모든 게 매끄럽게 맞아들어간다는 것, 총체적으로 조화롭다는 것은 이 전시의 정말 훌륭한 점이자 성취라고 생각해요. 동시에 저는 접근성의 문제라는 게 어떤 면에서는 투박함, 못생김을 다루는 일이라고도 생각하거든요. 색깔이 튀는 점자블록, 단순하고 쉽게 다가가기 위해 둥글어지고 뭉툭해지는 작품 설명, 투박하고 튀어나와 있는 경사로처럼…

제 생각에 장애는 분명… 앞에서 아름답다고도 했지만… 못생긴 것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그 못생김과 거칢에서 발휘되는 힘이 반드시 있다고 믿어요. 근데 미술관에서 곧 죽어도 용납 못하는 게 이 안 예쁜 거, 못생긴 거잖아요. 전시를 만드시면서 분명 이런 매끄러운 것과 튀어나오는 것 간의 관계, 아름다움과 장애 및 접근성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복잡한 고민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예원 석운동의 지원, 아인투아인의 현일, 그래픽 디자인을 한 ‘낫심플’의 현후와 지예, 그리고 저까지, 디자인에 관여한 사람들은 모두 처음부터 누가 봐도 아름다웠으면 하는 목표가 있었어요. 그런 생각이 있었던 거죠. 왜 장애인 이용자들이 쓰는 것들은 안 예뻐야 돼? 다들 이용자 중심적인 디자인을 원하면서 이것만 못생겨야 돼? 정말 예뻐 보일 수 있잖아요. 또, 비장애인의 접근, ‘난 이거 모르겠어, 아니야’ 하고 돌아서지 않도록 그들의 관심과 마음을 끄는 것도 중요했어요. 이 안에서 서로 가까워지는 걸 원했어요. 그 방법을 우리가 찾아보고 싶었고요.

그런데 배리어프리 장치들이 자주 못생겨지는 건 애초에 전시를 설계했을 때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을 때가 많아서인 것 같아요. 다 해놓고 나중에 부착하기 때문에 못생겨지는 거예요. 처음부터 전시와 연결될 수 있는 지점들을 고민한다면 충분히 아름답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다음에 전시를 할 때 전시의 메시지가 꺼칠꺼칠해야 한다면, 그 꺼칠꺼칠함 속에서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게 계속 고민해 볼 것 같아요. 아예 모든 게 다 거슬리고 불편하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고요.

사실 저는 너무 추하다고 하는 것들도 너무 아름다워요. 최근에도 〈노트르담의 꼽추〉를 다시 보게 됐는데, 그 사람이 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또 이걸 처음 보는 사람이 ‘윽’ 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싶지는 않고요. 그냥… 멋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나 봐요. 그게 저의 디자인적 관점인 것 같아요.

은빈 그런 점에선 ‘티슈오피스’와 협업한 이번 전시의 웹 도슨트 페이지도 떠오르네요.16 핸드폰을 특정한 각도로 두어야만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서 이용자가 계속 각도를 틀고 관점을 바꾸고 움직이게 하죠. 예쁘지만 불편감과 번거로움을 계속 유발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 이 웹 페이지처럼 특정한 미적인 통일성은 가져가되 계속 균열을 발생시키면서 메시지 속으로 직접 들어가게 하는, 꺼끌거리고 튀어나와 있는 요소도 이 전시에 분명 있었어요.

다연 예쁘다고 하는 건 다 익숙해서 예쁘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처음 보는 사람은 예쁘다고 생각 안 할 수도 있지만 계속 알고 친해지면 예쁘게 보이듯이, 접근성 관련한 요소들도 못생겨 보일 수도 있지만 자꾸 보다 보면 그 안에서 ‘아 얘는 좀 더 예쁘네’, ‘얘는 조금 덜 예쁘네’, 이런 게 생길 것 같아요. 못생긴 것들도 많아지고 익숙해지면 당연해지거나 어쩌면 예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원 이게 해야 하는 디폴트, 기본값이 된다면 더 아름다운 접근성 장치들도 많이 생길 것 같아.

다연 예를 들어 저는 국내에만 주로 있으니까 점자 블록은 당연히 노란색인 줄 알았는데 해외 미술관에 나가보니 검은색도 있고 흰색도 있고 실버도 있더라고요. 미술관에 점자 블록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 존재가 되면 규격이나 규칙은 똑같더라도 그 안에서 조금 더 예쁘게 만들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미술관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예쁘게 만들겠죠.

예원 맞아요. 어느 미술관에서는 벨벳 바닥과 무광 실버 점자 블록, 이런 식으로 재질감의 차이를 두어서 시각적인 대비를 부각하기도 하더라고요. 너무 높지도 않아서 휠체어 이용자에게도 부담이 없고. 정말 재미있었어요.

저는 이번 전시 준비하면서 특히 독일의 사례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독일의 경우는 작품마다 촉각 전시물이랄지 이런 대체 자료를 엄청 많이 고민하고 모든 곳에 다 있더라고요. 제일 좋았던 건, 작품을 만지며 감상할 수 있는 좌대가 있었는데 한쪽에 움푹 파여있는 곳을 만들어둔 거예요. 흰지팡이 넣으라고요. 이런 식으로 계속 사용성을 따지는 게 엄청 큰 자극이 되었어요.

 

엄정순, 〈코 없는 코끼리 no.2〉 2024-2025, 설치, 고밀도 스티로폼, 재생 플라스틱 플레이크, 금속, 230(h)150(W)280(D)cm. 시각장애인의 코끼리 접촉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코끼리 조각. 관람자는 우툴두툴한 코끼리의 질감의 표면을 직접 만지며 관람할 수 있다. 코나 다리 등 코끼리를 이루는 신체의 일부가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관람자는 해당 조각을 직관적으로 코끼리의 형상이라고 느낀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김선우 촬영

 

작품마다 벽면에 설치된 촉감타일은 시각, 촉각, 청각 등 각 작품 관람에 필요한 감각의 종류를 알려준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박선호 스튜디오(박선호, 손현욱, 박단비) 촬영

 

예원 아 참, 말 나온 김에. 저희 지금 후도록도 계속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요, 이걸 데이지(DAISY) 파일로도 만들려고요.

은빈 데이지 파일이 뭐예요?

예원 단순한 전자책을 넘어서서 아예 시각장애인용으로 개발된 음성도서 파일이에요. 이게 있으면 인쇄물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각자 원하는 디지털 파일 형식으로 변환해서 읽을 수 있어요.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로도 읽을 수 있고 핸드폰으로 연결해서 오디오로도 들을 수 있고요. 만들어서 점자도서관에 배포하려고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마침 전시도 연장되어서 도록을 더 예쁘게 만들 수 있게 됐어요.17

은빈 맞다. 너무 좋네요. 김포에서 또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제 슬슬 마무리 지어보려고 하는데요, 두 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예원 저는 항상 너무 운이 좋은 게 작가님들 운이 항상 있어요. 어떻게 다들 그렇게 사랑이 많으시지. 저 완전 T거든요. 그런데 너무 지쳐서 만나러 가다가도 작가님들 만나고 집 가는 길이 너무 행복해요. 오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은빈 아이고, 제가 감사합니다. 다연 님도 한 말씀 남기신다면?

다연 저요? 저는… 여러분, 김포로 전시 보러 오세요. (웃음)

 

ACC 복합전시 6관에서 열린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 전시장 전경.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김선우 촬영

 


1 2024 ACC 야외전시 《현장 속으로: 기억과 사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대, 2024.10.15. – 11.24.
2 2024 ACC 《찾아가는 배리어프리 인권영화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1, 2024.11.08.
3 석운동, 〈짓기와 거주하기 세미나: 배리어프리 현장〉, 2024.11.07 – 12.05.
4 장근영, 이성수 지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예술현장의 배리어프리 리얼타임』, 1도씨, 2024
5 SeMA 모두를 위한 예술 프로그램 〈나의 손을 너의 등에: 되기, 기억하기, 함께 움직이기〉, 김원영, 손나예, 하은빈 진행,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프로젝트갤러리 및 로비, 2024.11.13. – 11. 15.
6 박예원, 이다연 큐레이터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루어진 워크숍 〈나의 손을 너의 등에〉에 참여한 뒤 김원영, 손나예, 하은빈에게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 전시 참여를 제안했다. 참여를 고려하며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이지양, 여혜진 작가가 합류해 비디오 사운드 설치 작품 〈안녕히 엉키기〉를 함께 만들었다.
7 김도현, 「중동태와 당사자주의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 연계 학술 프로그램 〈서로를 기대며〉, ACC 어린이극장, 2025.6.10.
8 2023 ACC 공모 전시 《틈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이은정, 유지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로비 오픈홀, 2024.09.14 – 12.31.
9 김지원은 2017년부터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석운동’을 운영하고 있다. 상업공간과 전시공간의 디자인, 제작, 시공을 하고 있으며 장애학과 공간에 관심을 두고 세미나 〈짓기와 거주하기〉를 진행 중이다.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 공간 제작에는 석운동의 김지원, 남어진, 임정연, 최주현, 서민경이 함께 했다.
10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는 2025년 4월 16일부터 6월 29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전시 6관에서 열린 뒤 7월 23일부터 8월 22일까지 모두미술공간에서의 순회전시로 이어졌다.
11 디자인을 전공한 박현일 대표는 ‘아인투아인’을 통해 현대 예술과 생활 디자인 전반에서의 포용성을 모색하고 있다. 접근성 연구와 실천을 위한 리서치랩을 운영하고 있으며 유니버설 디자인 제품과 브랜드 개발에 힘쓴다.
12 《구본창: 사물의 초상》, ACC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3관 및 4관, 2024.11.22 – 2025.3.30.
13 Buk SeMA 어린이 방학 프로그램 〈배낭 탐험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B1 전시실 5, 6, 2025.07.22 – 08.29.
14 아야 모모세 작가의 〈녹는점〉은 작가의 실시간 체온과 동일한 온도로 데워진 물을 유리잔에 담아 관람객에게 내어주는 퍼포먼스 및 설치 작품이다.
15 비디오 설치 및 사운드 작품 〈안녕히 엉키기〉의 제작을 위해 기획된 사전 워크숍으로, 2025년 2월 24일에서 26일까지 3일 간 복합전시 6관 및 예술극장에서 진행되었다.
16 https://crossing-the-line.vercel.app/
17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는 모두미술공간 전시를 마친 뒤, 2025년 9월 26일(금)부터 11월 30일(일)까지 김포아트빌리지 아트센터에서 순회 전시를 이어간다.

 

2025 ACC CONTACT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

2025.4.17.(목) – 6.29.(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6관


주최·주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 김상욱
기획운영관 남찬우
전시기획과장 박진석
학예연구관 김지하
학예연구사 김혜현 박예원 오혜미 임리원
학예보조원 박태환 이다연 전민수

전시 총괄 박진석 김지하
전시 기획 박예원
학예 보조 이다연
전시 지원 박태환
기술 진행 김민국
기술 지원 유복음 하종수 김명규
무대기술 지원 임종민 임지은 박성용 김평강 김선진 백용민 임혜영 문성재 범서인 이성호 김선우 김성호 김종호 임훈성
창제작 협력 양동기 안재영 박찬진
그래픽디자인 낫심플(박지예 조현후)
공간디자인·조성 석운동(김지원 남어진 서민경 임정연 최주현) 스페이스 엑스
미디어 설치 조은
운송·설치 현대에디피(김승태 김현기 이병희 임태균 정주호)
조명연출 에르코 라이팅(임철훈 허기호) (주)위미코(임철민 권순우 전은모 조성춘)
사진 박선호스튜디오(박선호 손현욱 박단비) 김선우 박현진
영상 프로젝트 에프에프에프(박재영)
접근성 프로그램 운영 조금다른 주식회사(소재용 조예진 이충현)
모바일도슨트 티슈오피스(이상익 조영 류지훈 송하은)
감각키트 아인투아인(박현일)
음성해설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서수연)
그림책 서유진
촉지도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촉각교재제작팀
홈페이지 운영 김지원
홍보·마케팅 김은주 김선우 설보영 임승현 이슬 이현주 김가은 김성훈 배현명
행정 지원 정원채 정영록 김미형 박현미 이재문 장영웅
시설 지원 한승민
전시 운영 지원 진명진
전시장 운영 강영민 김경미 김경표 손경재 송현승 양유진 이정원 이정은 이지원 장병관 정샘 조안나 조지은 한재희 항영지 허하늘
도슨트 김소민 김엽 박의성 박혜윤 백강화 이광희 이민영 이옥경 장수연 황선아 조아현
접근성 매니저 선소미 윤고은 최인화 최하은 최해린 황혜지

 

협력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 방귀희
사무국장 고준환
전시 협력 총괄 백기영
전시 협력 기획 최인경 정세영
전시 협력 진행 김도영
전시 협력 지원 김재연 하원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