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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광속으로 길을 잃는다면:김수화 〈애프터바디〉
한수민
〈애프터바디〉(2024), ©김수화
2024년 12월 7일, 여의도로 향하는 버스가 정차해야 할 정류장을 우회해서 멈춘다. 버스 기사는 승객들에게 여기서 내려야 한다고 알려준다. 대부분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승객들은 보통 때보다 큰소리로 감사하다고 대답하며 하차했다. 정해진 노선을 반복하는 버스는 갑작스럽게 경로를 이탈했고,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의 발걸음은 조금 다른 방향의 길을 내고 있었다. 이들은 평소에 서로 마주칠 일이 별로 없지만 오늘은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다. 각 지역의 노조 지부들, 젊은 여성들, 귀여운 문구의 깃발들, 시위의 연륜이 꽤 있어 보이는 중장년들, 부모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보인다. 여의도의 좁은 거리는 예상을 훌쩍 넘은 인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에 밀려 시위대의 가장 앞쪽으로 갔다가, 다시 밖으로 밀려났다가, 다시 밀려 어느 지역농민회 깃발 아래에 떠밀려 자리했다. 대규모 인파는 좁은 거리의 정체뿐만 아니라 통신 오류도 발생시켰다. 핸드폰이 먹통이 되었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꺼내서 타임라인을 아래로 당겼는데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 나는 조금 일찍 여의도를 빠져나와 문화비축기지로 향했다.
전날 받았던 공연 안내 문자를 다시 확인하며 문화비축기지 T1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공연장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을 기다리고 있는데, 대기 공간 한 벽면에 행운의 편지가 예상치 못하게 도착했다. 관객들은 비슷한 형식이지만 출발 장소와 시간이 다른 행운의 편지 네 통을 스크린으로 연달아 보게 된다. 행운의 편지는 보통 비슷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어디에서 최초로 시작하여 몇 시간 안에 몇 명에게 이 편지를 전달하면 행운이 따를 것이고 이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불행할 것이라는 저주와 협박을 담은 내용이다. ‘행운’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수신자를 협박하여 편지를 퍼뜨리라는 미션을 준다. 하지만 행운의 편지가 다른 협박 편지보다 흥미로운 점은 항상 편지의 기원을 밝힌다는 점이다. 1930년 영국, 경인년 전라도처럼 구체적인 시점과 지명을 언급하며 이 편지가 출처가 분명하며, 아주 오래도록 살아남아 지금까지 이어져 도착했다는 걸 암시한다. 지시 사항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누구는 로또 20억에 당첨되었다거나 아니면 무시한 사람이 암살당했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가며 편지의 공신력을 증명하지만, 이 편지의 진짜 공신력은 사실 편지가 내 앞에 도착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발신인과 수신인을 거쳐 또 편지가 이동했다는 것이다.
영상에는 이런 협박성 편지와 함께 편지가 배달된 여러 이동 수단들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흘러간다. 비행기, 배, 기차, 자전거 등을 통해서 허무맹랑한 메시지를 이동시키는 물리적인 기반들을 드러내고, 이동 경로를 함께한다. 천리를 가는 말의 보이지 않는 발을 드러냄으로써, 관객은 지금 내 앞에 도착한 편지의 내용에 집중하기보다는 편지가 도달했을 수많은 수신자들, 수신자들을 잇는 이동 경로와 이동 수단들 그리고 지나쳐왔을 풍경을 상상하게 된다. 편지의 여정을 떠올리며 이 편지를 받았을 수신자들의 당혹스러움, 설렘, 두려움, 재미, 귀찮음 등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 편지가 긴 시간을 거쳐오며 편지가 만들어낸 행운과 불행의 이야기가 어떻게 휘발되고 덧붙여지고 기워졌을지도 궁금해진다. ‘행운의 편지 1’부터 ‘행운의 편지 4’까지를 보고 나면 다시 ‘행운의 편지 1’이 시작되는데, 2023년도로 추정되는 비교적 최근에 (아마도) 김수화로부터 시작된 ‘행운의 편지 1’은 경로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이로 전달되는 편지와 달리 ‘행운의 편지 1’은 파동의 형태로 더 신속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영상에 나오는 지붕 위의 안테나, 우리 근처 곳곳에 있는 기지국은 이 편지가 이동하는 경로를 대충 가늠하게 해준다. 앞선 편지가 운송수단을 타고 장거리 여행을 거쳐, 오발송되거나 중간에 찢기지 않고 나에게 도착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 신생 행운의 편지는 전파를 통해 수많은 ‘뱉어지는 말’ 중에 여기에 붙잡혔다는 점이 행운일 것이다. 비행기나 기차의 속도에 비할 수 없이 빠르고, 시각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신속함은 편지가 담고 있었던 시간과 풍경을 지운다.
영상이 끝나면 관객들은 영상이 프로젝션 되었던 벽의 뒤편에 위치한 작은 공간으로 이동한다. 공연의 퍼포머인 김수화는 어떤 장치를 들고 있는데,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장치에는 무선 셀룰러 신호를 수신할 수 있는 센서와 스피커가 달려 있다. 공연에서 장치는 퍼포머의 또 다른 감각 기관이자, 무대 공간에 계속해서 신호와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퍼포머는 장치를 들고 공간을 더듬는다. 장치는 움직임이나 위치에 반응해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장치가 수신하는 신호 세기에 따라 미리 저장된 소리가 재생되기도, 끊기기도 한다. 퍼포머는 가장 안정된 위치에 장치를 내려놓고 맞은편으로 이동해 자신의 목소리를 마이크로 증폭시킨다. 그리곤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자신의 목소리가 공간에 머무를 수 있도록 루프를 이용해 목소리 층을 쌓는다. 김수화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커다란 스피커와 와이파이 신호에 반응하여 소리가 나오는 작은 장치 사이에 몸이 놓이고, 성대를 울리는 소리와 숨소리가 섞여 몸이 동시에 울린다. 큰 스피커, 작은 스피커, 몸 이렇게 세 가지 장치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게 되는데, 관객들은 작은 방안에 빽빽하게 차 있는 진동을 온몸으로 느낀다. 소리는 어느 것이 실재이고 복사본이고 구분할 수 없이 각기 다른 진폭과 주기로 피부에 부딪친다.
〈애프터바디〉(2024), ©김수화
뒤이어 장치를 들고 다시 공간을 더듬기 시작한다. 공간을 가득 채운 진동을 경험한 관객은 이제 공간에 들어 차 있는 파동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퍼포머가 장치를 들고 여기저기를 이동함에 따라 장치는 이제 신호 세기에 따라 어떤 단어들을 뱉어낸다. 퍼포머는 조심스럽게 파동의 밀도와 신호 세기에 민감하게 몸을 움직인다. 마치 돌고래나 박쥐가 반향 정위(echolocation)를 통해서 위치를 감각하는 것처럼 공간과 자신의 위치를 조정한다. 반향 정위란 음파나 초음파를 이용하여 나와 주변을 감각하는 인식의 형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 형태는 보거나 인식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기보다는 나와 주변을 둘러싼 환경의 관계에 집중하게 한다. 퍼포머와 간단한 장치, 관객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지만, 이 공간에는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감각할 수 없는 파동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땅이나 바다에 묻혀있는 케이블을 타고, 기지국을 통해, 장치에 달린 공유기를 거쳐 눈과 귀가 감지할 수 있는 특정 주파수의 신호로 변환하여 다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문자/이미지로 나타나기까지. 퍼포머의 더듬거림은 작은 방 안뿐만 아니라 T1 건물 전체, 상암 일대, 바다 건너 다른 대륙으로 확장된다.
퍼포머는 장치와 함께 조심스럽게 공간을 이동하며 자연스럽게 이 건물의 메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크고 추운 공간으로 관객을 이끈다. 이곳에서 퍼포머는 위치추적기를 단 철새처럼 장치를 몸에 얹어놓고 공간 이곳저곳으로 움직인다. 위치추적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새의 경로는 비록 점과 점을 잇는 정도로, 그 사이의 시간은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공연장 안 퍼포머의 몸은 위치의 이동뿐 아니라 몸을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흔들림, 움직이는 몸을 따라 이동하는 시선들까지 다양한 몸들이 얽혀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신호 세기에 반응하여 소리가 계속 흘러나오지만 이제 소리보다는 몸과 움직임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이곳에서 퍼포머는 파동을 더듬거리는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파동의 방향을 바꾸려 움직인다. 장애물(관객) 사이를 이동하기도 하고 크게 뜀박질하여 이곳에서 저곳으로 위치를 변경하기도 한다. 줄넘기하면서 바람을 만들고 진동의 진폭과 흐름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장치에서는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소리가 흘러나오는데, 퍼포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호가 일정하게 수신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만약 이 정도의 방해에 통신이 흔들린다면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 사용에 크나큰 불편함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움직임에도 통신이 방해된다면 아무도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평소에도 전파 송수신을 통해서 많은 정보들이 즉각적으로 매끄럽게 전달되고 있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아주 먼 곳일지라도 광속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전달받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퍼포머는 즉각적인 연결을 지연시키고자 하며, 길을 잃는 것을 ‘능력’이라 부르며 안정적인 신호에 개입하고 관여하길 원했다.
김수화는 광속과 같은 속도에 제동을 건다기보다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어 둔감해진 시공간의 감각을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길 제안한다. 네트워크화된 통신의 속도를 통해 생산되고 보급되는 메시지와 사건들을 우리가 상상한 것만큼 세계 곳곳에 도달하기는커녕 특정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끝없이 순환될 뿐이다. 좁디좁은 이곳에선 나를 반영하는 목소리만이 반향실(echo champer)에 갇혀 반복된다. 반향실 속에선 내 목소리가, 나의 앎이 거듭 반복되어 결국엔 진실로 자리 잡게 되는 폐쇄적인 믿음의 구조로 단단해진다. 다른 목소리가 개입될 여지는 줄어들고 ‘나’의 존재만이 강화되는 것이다. 퍼포머는 장치에 미리 입력된 “혼자 있어요?”라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열심히 대답해 준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지금 관객들과 함께 있다고. 궁금함이 전혀 없는 건조한 목소리에 열심히 대답하는 것을 통해서 퍼포머는 견고하고 안정된 흐름에 끼어든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으로 뉴스를 확인했다.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지 못했다. 메신저로 친구들과 우울한 얘기를 주고받다가 다음 주에 다시 보자는 약속을 했다. 거리의 사람들을 떠올린다. 버스를 우회시키고 통신을 끊게 만들 정도로 수많은 몸들과 내 반경에 없었던 사람들과 함께하며 세계를 더듬어 본 경험을.
김수화 〈애프터바디〉
2024.12.6(금) – 7(토) 17:00
문화비축기지 T1
기획, 안무, 출연 김수화
공동창작 Jye-Hwei Lin
기술디자인, 제작 신교명
공간디자인, 설치 허성범(건축적사무소)
사운드디자인, 오퍼레이션 김동용(끄고키고)
행정 김윤아
글 한수민, 하라
기록촬영 강민정
주최, 주관 김수화
후원 서울문화재단
2024년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