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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감각하는 사회적 안무, 몸의 합창:
〈비극과 코러스: 움직임 합창〉*

조형빈

*이 글은 2024 코리아나미술관 『*c-lab 8.0: 코러스』 자료집에 수록된 글입니다.

 
〈비극과 코러스: 움직임 합창〉 사진 윤재민

 

형상으로서의 재난

재난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 질문은 우리가 ‘재난’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이 문화적인 맥락 안에서 어떤 결과를(언제, 어떻게, 왜) 발생시키는지에 대한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재난은 어떤 강렬한 순간에 포착되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순간을 통해 드러나기까지 축적된 과정과 재난이 가시화된 이후에 그 여파를 짊어지는 개인적/사회적 후유(後遺)를 재난의 개념에 포함한다면 재난이라는 것이 결코 하나의 찰나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난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 역시도 점유하며, 또한 이 ‘긴 재난’의 과정 속에 어떤 재난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영향을 주기도 하면서 인간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구조 자체에 타격을 입히거나 단순히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 세계 자체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재난을 이야기하는 것이 결국 인간이라는 점에서 바라본다면, 재난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특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재난의 피해를 추산하고 평가(정량적이고 정성적인 측면 모두에서)하고, 그것의 원인과 여파를 밝히고자 한다. 그것이 인간에 의해 촉발되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재난의 형상을 어떤 식으로든 ‘인식’하고자 하며, 따라서 우리가 재난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거름망을 통과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거름망을 통과했을 때, 세계 자체를 변화시키는 재앙이 인간 개개인의 삶에 파고들어 우리의 몸을 변화시킬 때, 우리는 세계의 울퉁불퉁한 톱니가 인간이 모양 짓는 작은 요철들과 어떻게 맞물리고 있었는지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곧 세계와 맞닿아 있는 우리 몸의 형상을 인식하는 것과 같다. 이 깨달음의 순간, 세계를 사유하는 가혹한 하나의 방식을 우리는 ‘비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상존하는 재난들 속에 살아간다. 재난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그것들은 쉽사리 떠나지 않고 깊은 상처의 얼굴을 하고 우리 곁에 머무른다. 세월호 침몰 사고,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사태, 이미 어느새 한 발 들어서 있는 기후 위기와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들까지, 멀리 혹은 가까이 재난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이 재난들은 단순히 특정한 시점에서 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위험(danger)의 형태, 이 재난의 모습들을 근대성과 연관 지었다.1 근대 이후의 인간 사회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예측 가능하거나 대처 불가능한 재난들을 체계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따라서 위험이 만연한 ‘위험사회’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회를 성찰하는 새로운 근대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위험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파악할 수 있으며, 또한 나아가 세계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만약 근대성의 지극한 표상을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우리의 몸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면, 재난이 일상화된 이 시대에 세계에 꿰맞추고 있던 우리의 몸을 다시 성찰하고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재난에 휩쓸리고 난 후 거기에서 멈춰서서 회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재난을 관통하여 더 나아가기 위해 몸과 그것이 배태되어 있는 세계의 모습을 다시금 고민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되묻게 된다. 우리의 몸은 이 재난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재난이 때로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또 그 막대한 규모와 시간성에 비추어보았을 때 그것을 ‘대비’한다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처럼 들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재난이 오거나 혹은 오지 않았을 때, 우리가 그것을 어떤 몸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 준비하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올해의 *c-lab 8.0에 참여한 송주원 안무가의 〈비극과 코러스: 움직임 합창〉(이하 〈비극과 코러스〉)은 우리가 재난을 몸을 통해 어떻게 기억하고, 재난과(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작업이다. 재난이 단순히 한 개인에게 닥친 ‘비극’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가 공동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세계의 형상은 무엇이고 또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합창’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바로 〈비극과 코러스〉의 질문이었다.

 

〈비극과 코러스: 움직임 합창〉 사진 윤재민

 

 

기억하기와 발화하기

〈비극과 코러스〉는 3주에 걸쳐 워크숍, 렉쳐, 퍼포먼스의 형태들로 구성되었다.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의 느린재난연구실과의 협업이 함께 진행되었는데, 30여 명 남짓의 참가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매주 다른 내용의 발표가 이루어지고 그것을 몸으로 해석해 보는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느린재난연구실은 재난을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이벤트가 아닌 긴 시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재난의 개념에서 나아가 재난 정의, 젠더, 비인간, 쓰레기와 인류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재난과 연결하여 연구해온 곳이다. 특히 사회과학자, 엔지니어, 예술가 등과 함께 협업하여 재난의 역사와 공동체를 연구해 온 ‘재난학교’를 2022년부터 매년 운영해 오고 있다. 이런 흐름 안에서 느린재난연구실은 〈비극과 코러스〉에서 재난을 둘러싼 세 가지 주제, 각각 비인간, 폐기물, 번역을 주제로 삼아 렉쳐를 진행하고 이와 연결된 송주원의 프랙티스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협업하였다. 

금요일과 토요일 양일에 걸쳐 3주 동안 진행된 〈비극과 코러스〉는 매주 다른 소주제를 다루었는데, 금요일에는 참가자들이 느린재난연구실의 발표를 듣고 해당 주제에 대한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나누었고 토요일에는 떠올린 기억과 경험을 적어보고 그것을 직접적인 움직임으로 만들어보는 프랙티스를 진행하였다. 세 개의 조로 나누어진 그룹에서 참가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 주제에 대한 개인적인 다섯 가지 질문을 종이에 적었고, 둘째 날의 프로그램에서 이 질문을 움직임으로 바꾸는 ‘움직임 악보’를 만들어 실제로 그것을 몸으로 실행하는 퍼포먼스를 만들었다. ‘움직임 악보’는 일종의 안무 작법의 방법으로, 각각의 질문에 해당하는 움직임을 기초 움직임(눕기, 걷기, 달리기 등)과 방향, 속도, 위치와 조합하고 일종의 무보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자신이 던진 재난에 대한 질문을 몸으로 표현하거나 그것에 대응하거나 그것에 스스로 답하는 방식의 움직임을 만들고 실행했다.

참가자 모두가 참여하는 이 프랙티스는 각자가 느끼는 재난의 형상과 감각을 몸으로 옮기는 경험이 되기도 했지만, 또한 참가자 각자 움직임의 방향을 어디로 정하고 어떤 공간을 점유하는지 보여줌으로써 기억과 질문을 형상화하기도 했다. 첫날 발표가 끝나고 아이디어를 나눈 참가자들은 각자의 질문과 이름을 메모지에 써서 c-cube 공간 곳곳에 붙이는데, 다섯 개의 질문을 모두 붙이고 나면 모두 함께 자신의 이름으로부터 출발해 질문을 하나하나 거치며 그것을 소리 내 읽는다. 이 발화의 과정은 참가자 각자의 몸의 상태를 재난에 대한 질문 안으로 넣는 동시에, 이동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고민과 기억을 마주치게끔 하는 교차와 중첩을 발생시킨다. 공간은 참가자 개인의 단일한 경로에 따라 구성되는 대신, 다양한 목소리와 몸이 서로 (걷고, 뛰고, 기어가다가) 엉키는 합창의 국면을 만들어낸다. 수십 명의 몸은 재난이 만들어내는 몸의 취약성을 떠올리며 움직이므로 이 합창은 대단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취약한 몸들을 보살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참가자-퍼포머는 자신의 스코어를 수행하면서도 타인과 함께 공간을 구성하는 일종의 공동체적 퍼포먼스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질문을 종이에 쓰고(기입), 그것을 입으로 읽어내며(발화), 질문에 대처하는 스스로의 방식을 움직이는(수행) 일련의 과정은 끊임없이 공간을 재구성하고 무수한 몸의 기억을 펼쳐놓는다.

이 기억의 방식, 몸의 방향과 속도, 움직임들은 저마다 달랐지만, 또한 각기 다른 주제 안에서도 재난을 대하는 몸의 태도가 어떻게 묶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사건이기도 했다. 재난과 비인간에 대한 주제를 다룬 첫째 주에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전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비인간의 개념을 사유하려는 몸짓들이 보였고, 폐기물과 관련된 두 번째 주에서는 인간의 부산물, 남겨진 찌꺼기들을 통해 세계의 남은 부분을 사유하려는 노력이 공간과 소리를 통해 드러났다. 재난은 몸에 무엇을 남기는가? 재난 앞에 선 몸은 어떻게 변하는가? 참가자들은 육성으로 내는 각자의 질문 사이에서, 취약해진 몸을 이끌고 재난과 조응하거나 그것에 대처하거나 혹은 그 앞에서 실패하는 몸들을 보여주었다. 재난과 나의 몸 사이를 가늠해 보는 이 퍼포먼스는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생각과 몸을 나누는 공동체를 상상함으로써 완성되는 일종의 안무-되기였다.

 

〈비극과 코러스: 움직임 합창〉 사진 윤재민

 

 

장소와 공동체, 그리고 사회적 안무

송주원은 이미 이전에도 기억과 공간을 되살리고 그것으로부터 몸과 시간성을 고민하는 작업들을 꾸준히 이어왔다. 특히 2024년 경기도미술관에 전시되었던 〈내 이름을 불러줘〉의 경우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진행된 전시 《우리가, 바다》에 참여한 작품으로,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소리 내 부르면서 작가 본인의 몸짓으로 구성한 영상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송주원은 1시간 35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고 각기 다른 방위와 움직임으로 그들을 기억해 나가면서 재난에 처한 몸들을 어떻게 추모하고 기억할지 몸을 통해 고민한다. 재난을 단순히 멀리 떨어진 곳의 장면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직접적으로 몸에 연결했을 때 어떤 정동이 발생(affected)하는지 몸과 관객, 기억 사이의 관계성을 고민하는 작업인 것이다.

또한 송주원이 10여 년에 걸쳐 이어왔던 풍정.각(風精.刻) 프로젝트(이하 ‘풍정.각’) 역시도 공동체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오래되거나 밀려난 공간에 유령 같은 몸들을 배치함으로써, 공간을 새롭게 생각하고 공간의 기억을 재배치하는 것이 ‘풍정.각’의 영상들이 던지고자 하는 질문이다. 공동체의 기억을 복기하고 장소에 남은 관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풍정.각’의 작업은 때로 껍데기만 남은 마을의 기이함을 포착하거나(〈풍정.각(風精.刻) 리얼 타운〉),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오래된 마을의 흔적을 조명(〈풍정.각(風精.刻) 푸른고개가 있는 동네〉)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이어져 왔다. 이 일련의 작업은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시대적 흐름에 강제로 변화해 버린(혹은 변화가 예정된) 장소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공동체를 상상하도록 독려한다. 영상 안에 등장하는 무용수들은 몸이지만 동시에 공간 위에 부유하는 몸-아닌-것으로 묘사되면서, 그 공간에 있어 마땅한 몸이 무엇일지 가늠해 보는 정동을 관객으로부터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매주, 단 하루에 완성되고 끝나는 해프닝과 같은 퍼포먼스로서 〈비극과 코러스〉는 재난과 공동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내러티브나 상황적 묘사를 통해 미적 감각 혹은 경험을 이끌어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앤드루 휴잇(Andrew Hewitt)은 무용과 안무를 바라봄에 있어 ‘사회적 안무’의 개념을 언급하면서 안무의 정치적 가능성을 제기하였는데, 안무라는 것이 단순히 사회적 경험을 이념적으로 반영하는 일종의 표상을 넘어서서 하나의 새로운 사회 질서를 구성할 수 있는 정치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2 예술 작품이 유물론적 관점에서 사회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휴잇 역시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미학이 정치와 분리되어 이데올로기의 상부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기존의 분석을 반박하는 것이다. 특히 안무가 ‘사회적 안무’로서 오히려 이데올로기를 구성하고 정치적인 것을 무대 위에서 촉발시킬 수 있다면, 무용이 예술 작품으로서의 경험을 넘어서서 하나의 수행적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비극과 코러스〉는 참가자들이 직접 퍼포먼스를 구성하지만, 단순히 어떤 스코어를 습득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방식의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재난을 둘러싼 서로의 질문을 충분한 시간에 걸쳐 공유하고 그것을 몸으로 만들어본다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재난이 몸에 다다랐을 때 우리가 마주하는 취약성,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그 취약성을 어떻게 보듬을지를 고민하는 일이 ‘움직임 악보’를 작성하면서 벌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이 ‘안무들’을 퍼포먼스 안에서 함께 나눌 때, 그것은 재난에 대한 공동체적 사유이자 몸에 대한 공동 발화가 될 수 있었다. 재난을 다시 생각해 보는 ‘사회적 안무’를 구성한 것이다. 모두 함께 만들어내는 퍼포먼스이자 단 하루, 그 시간에 벌어지는 것으로서의 해프닝인 이 작업은 그래서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연결하고자 하는 송주원의 시도이기도 하다. 이전까지의 작업이 장소와 기억을 무용수나 안무가 본인의 몸 안으로 가져와 그것을 체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참가자들과 함께 한 이번 〈비극과 코러스〉에서는 몸이 가지고 있는 재난에 대한 본연의 기억을 꺼내 바깥으로 내보내는 방식의 퍼포먼스가 구성되었다. 오랜 시간 기억과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이어온 송주원은 재난이라는 비극을, 함께 나누는 몸을 고민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내고자 한 것이다.

 

〈비극과 코러스: 움직임 합창〉 사진 윤재민

 

 

합창으로 나아가기

〈비극과 코러스〉는 또한 재난을 하나의 ‘비극’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코러스와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에 따르면, 비극의 구조 안에서 코러스의 역할은 디오니소스적 도취를 무대와 관객 사이에 불러일으킴으로써 개인적인 모든 것을 ‘망각의 강물’ 속에 넣는 데에 있다.3 여기에서 현실은 디오니소스적 현실과 따로 떨어져 나오고, 관객은 무대에서 (코러스를 통해) 안내된 무대 위의 디오니소스적 현실에 잠김으로써 현실에 대한 ‘소름 끼치는 통찰’을 얻게 된다. 여기서 진리를 직시함으로써 현실의 사물 본질을 영원히 바꿀 수 없다는 위압감 속에서 삶이 부정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러한 맥락 안에서 예술은 이 ‘부정된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비극의 탄생』에서 코러스를 구성하는 사티로스(satyr)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근대적 표상이 아닌 자연 그 자체, 숭고함의 담지자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와 같이 그려진다. 코러스는 “몰려드는 현실을 막아선 살아있는 장벽”4으로서, 우리가 믿는 바로써의 현실이 아닌 참된 현실을 완벽하게 반영하는 존재들이다. 만약 코러스가 현실 너머의 진실을 보게 하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면, 우리는 비극을 통해 우리가 처한 사회구조의 모순들을 넘어서는 시선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운명 앞에 놓인 인간이 그 운명에 맞서는 대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비극의 구조가, 재난 앞에 맞닥뜨리는 우리의 ‘비극적’인 현실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가능성은 바로 여기서 온다. 현실의 재난이 무대 위의 비극과 동치 된다면 그 재난을 맞닥뜨리고 받아들이는 우리는 디오니소스를 찬양함으로써 오류를 일으키는 현실을 넘어서서 진리를 직시하는 코러스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러스는 예술의 힘을 통해 현실을 넘어서게 만드는 조력자이자 그 스스로가 재난-무대를 바라보는 ‘이상적 관객’이다. 〈비극과 코러스〉의 참가자들은 매일의 해프닝을 관극하는 관객이자, 작품을 만들어내는 퍼포머의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 참가자들은 퍼포먼스 안에서 본인의 몸과 만나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간을 가로지르는 다른 서른 명 남짓의 기억들과도 마주친다. 수행과 관극의 경험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이 ‘비극’에서 코러스가 재난 너머를 바라보는 도취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미학과 정치학을 중재하는 ‘사회적 안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참가자들은 재난의 구조, 재난의 여백이 몸을 통해서 발화되는 과정을 스스로 만들어감과 동시에 재난이 일깨워준 세계의 형상을 깨닫는 코러스-관객의 역할 역시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의 감각과 경험 그리고 기억은 재난을 통해 세계의 형상을 인식할 수 있는 주요한 매개(medium)가 되고, 참가자들은 서로의 몸을 통해 재난의 비극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안무는 유물론적 이데올로기를 전복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가능성의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는 재난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비극과 코러스〉에서 참가자들이 경험한 것은 극장에서의 일방적인 관극 경험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일상화된 재난 속에서 우리 몸이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또 재난 앞에서 어떤 가능성과 시간을 가지는 몸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가운데 참가자들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동시대 안무와 미학의 역할이 고민해야 하는 지점을 서늘하게 보여주었다. 3주 동안의 워크숍을 통해 〈비극과 코러스〉는 지금 안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필요한 몸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의 퍼포먼스가 지나고 난 뒤에는 결코 완벽히 풀리지 않을 질문을 모두의 몸에 여운처럼 남겼다. 재난에 대처하는 몸들,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합창’할 수 있을 것인가.

 


1 울리히 벡, 『위험사회』, 홍성태 옮김, 서울: 새물결, 2006.
2 Andrew Hewitt, Social Choreography: Ideology as Performance in Dance and Everyday Movement,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5.
3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eBook], 김남우 옮김, 파주: 열린책들, 2014, 제7장.
4 위의 책, 제8장.

 

*c-lab 8.0 프로젝트 X 송주원 〈비극과 코러스: 움직임 합창〉

코리아나미술관 c-cube(B2)

[1회차] 그려보는 선: 비인간 동물과 재난
1부 | 5월 24일 (금) 19:00 – 21:30
2부 | 5월 25일 (토) 14:00 – 16:30

[2회차] 그려보는 자리: 버리기로 한 것들과 재난
1부 | 5월 31일 (금) 19:00 – 21:30
2부 | 6월 1일 (토) 14:00 – 16:30

[3회차] 알아채기 그리고 실천하기: 느린 재난의 번역
1부 | 6월 7일 (금) 19:00 – 21:30
2부 | 6월 8일 (토) 14:00 – 16:30

협력 연구자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느린재난연구실(박현빈, 금현아, 스캇 게이브리얼 놀스, 이슬기, 조엘 샴팔레)
프로젝트 어시스턴트 김단우, 김용빈, 하지혜

기획·운영 최선주 *c-lab 큐레이터, 김재아 *c-lab 어시스턴트
주최 코리아나미술관, 문화체육관광부,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주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후원 ㈜코리아나화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