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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침번이 끄덕끄덕 잠에 들고오래 울린 전화기가 침묵하고:시몬, 보영 낭독회 〈침범, 불침번〉
하은빈
〈침범, 불침번〉©스페이스 미라주
그러니까 이 공연에 그냥 들어갈 수는 없다. 흰 현수막에 파묻혀 널브러져 있는 좁은 출입구를 명백하게 가로막으며 엎드려 누운 보영을 못 본 체하면서 입장할 수는 없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일제히 오르는 다른 관객들의 행렬을 등 뒤에 두었으므로 떠밀리듯 고분고분 다리를 벌려 보영의 등을 넘어간다. 차라리 밟는 편이 더 나을까 싶은 생각이 이따금 뇌리를 스친들, 비 오는 날 패인 아스팔트 지면 위에 생긴 웅덩이에 대처하듯, 줄지어 들어오는 관객들은 그렇게 제 나름의 방식대로 보영 위를 폴짝 혹은 성큼 건너뛴다. 따지고 보면 공연이라는 사건에서 선을 넘는 이들이라 할 만한 쪽은 아무래도 공연자들보다는 관객일 테지만 보영의 가로놓인 몸은 꽤 오래간 문간에 머물며 침입자들을 방해한다. 낯선 이들의 침범을 막으려는 미력한 몸짓처럼, 그러한 침범의 경로를 역으로 넘어오려는 최후의 도발처럼, 하필 그 자리에 그런 꼴로밖에 있을 수 없었다는 듯한 체념 어린 포복처럼, 이 모든 상황에 대한 고집스런 함구처럼.
공연장인 스페이스 미라주는 작고 좁다. 무대와 객석이 나뉘기는커녕 관객들이 다 들어가기나 하면 간신히 족할 만큼이나 작고 좁다. 관객들은 이곳에서 대화 혼잣말 노래 전화 통화 독서 등을 할 수 있다는, 그러니까 관객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행위 양식의 기준으로 볼 때 거의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정말로 무엇이든 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기다린다. 유순하게 기껏해야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편한 방식으로 기대거나 고쳐 앉으면서 바닥에 수북이 쌓인 세단된 종이를 맞춰보고 조각난 텍스트를 읽거나 손으로 꼬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대한다. 그러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되 무슨 일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시간이 지나간다. 누군가 창문을 닫고 누군가 관객들의 웅크린 몸 사이를 헤쳐 나간다. 누군가 느지막이 도착하여 자리를 비집어 앉고 누군가 일어나 화장실에 간다.
모인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시몬이 이윽고 입을 열어 텍스트를 읽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보영이 부스스 일어나 몸을 감싸고 있던 현수막을 풀어헤친다. 툴툴거리며 타카로 다음의 시구가 반복적으로 빼곡히 적힌 현수막을 벽에 탕탕 박는다. 너에 죽음이 내 삶에 영토를 확정 지엇다 / 너가 업는 곳이 내 삶이다 / 너를 볼 수 업는 동안이다. 아마도 이곳은 그 국경인 모양이다. ‘너에 죽음’의 영토와 ‘내 삶’의 영토 사이를 가로지르는 그곳에는 곱게 세단된 종이들이 수북이 널려 있고 파쇄기의 결을 따라 가지런히 갈라진 글자들이 소복이 쌓여 있는 모양이다. 시몬과 보영이 이곳에서 서로의 시를 읽는다. 주로 시몬이 보영의 것을 보영이 시몬의 것을 읽지만 언제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시몬과 보영이 그곳에서 결코 오지 않을 이를 생각하며 불면의 번을 선다. 이 두 불침번이 써 내려간 문장들을 관객들이 제각기 자세로 듣는다. 결코 포개지지도 합쳐지지도 않을 각자의 ‘너’와 관계하며 쓰였을 그 시들이 이 ‘너가 없는 곳’ 에서 갈라지고 포개지고 합쳐지고 흩어진다.
〈침범, 불침번〉©스페이스 미라주
여기까지 쓰고 나서… 나는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다.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더 쓰면 안 된다고 느낀다.
나는 내가 그들로부터 태어나 그들에 의해 읽힌 문장들에 관해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몬과 보영이 글 속에서 ‘너’라고 부르는 진실에 대해 쓰기를 실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모든 여집합의 윤곽으로만 ‘너’를 가까스로 가리킬 수 있었던 – 혹은 그럴 수마저도 없었던 –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므로 내게는 그들의 문장들에 관해 내가 아는 애도 중에서 가장 애도를 닮지 않은 그 문장들에 대해 말할 깜냥이 없다는 것을 이쯤 해서 밝혀둔다. 그러나 이곳에 입장하기 위해 보영의 몸을 건너왔던 일과 그다지 다르지 않게, 여기까지 얼기설기 써 내려온 문장들이 내 등을 떠미는 바람에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 자신의 무능 위를 별도리 없이 넘어간다. 나는 이렇게 이어 적는다. 그들의 아름다우며, 짭짤하고, 명석하며, 얼큰하고, 섬뜩하며, 걸쭉하고, 단단하며, 징그럽고, 찝찔하며, 가여운 문장들이 서로를 짓이기거나 찢는 식으로, 혹은 짓이겨지거나 찢어발겨지는 식으로 태어났다가 사라졌다고. 그 문장들을 전해 듣는 나 또한 때로 예상치 못하게 짓이겨지거나 찢어발겨졌는데,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탄복하기에 앞서 그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었다고.
왜 괴로웠는가? 이 모든 것이 허락된 이 객석에서 내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눈물을 훔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키느니 차라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엉덩이로 이름을 쓰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마 그럴 용기까지는 나지 않았으므로 나는 나의 짓이겨지고 찢어발겨진 의식이 두둥실 떠올라 이 공간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다니도록 내버려두었다. 이를테면 벽면에 걸려있는 (거의) 조롱 조의 핑크빛 무드등 – “내가 살아있어서 기뻐” – 을 올려다보고, 옆 사람의 핸드폰 화면 속 인스타 스토리와 트위터 피드를 훔쳐보고, 누군가는 끄덕끄덕 졸기 시작하는 것을 얼마쯤 부러워하고, 옆 사람이 슬그머니 벗어놓은 신발의 구겨진 뒤축에서 풍겨오는 아주 약간의 발냄새를 맡았다. 그러는 동안 누군가는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마치 초상권이라는 개념에 관해선 태어난 이래 들어본 적도 없다는 양 플래시를 터뜨려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부스스 일어나 전자레인지로 슬금슬금 다가가 삼각김밥을 돌려 먹고, 또 어떤 누군가는 덥고 탁해진 공기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그러자 비 오는 차도에서 증폭된 도로 소음이 조그만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와 낭독하는 목소리를 가로막았다. 시몬은 도중에 홀연히 이곳에서 퇴장하고, 보영이 퉁퉁 불은 컵라면을 후루룩거리며 먹고,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옷으로 고소하고 짭짤한 컵라면 냄새가 스몄다.
〈침범, 불침번〉©스페이스 미라주
하지만 어떤 순간에 나는 어떻게든 상처받지 않겠다는 혼자만의 기이한 싸움에서 별안간 지고 마는데… 그것은 보영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을 때다. 큰 볼륨으로 흘러나오는 흥겨운 갤럭시 벨소리가 보영의 낭독을 오래간 방해하고, 마침내 보영이 그 전화를 받지만, 수화기 너머 그 누구도 대답을 돌려주지 않고, 그래서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는 보영의 걸걸한 목소리를 이곳에 모인 모두가 들었을 때다(혹은 듣지 않았을 때다). 두 개의 서로 다른 곳에 놓인 전화기가 열어젖히는 광활하고 보이지 않는 그 텅 빈 공간에서, 누군가 인이 박인 혼잣말을 영원히 되뇌고 있는 동안, 내내 아무런 응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모두가 지켜보았을 때다(혹은 지켜보지 않았을 때다).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두둑이 장전된 탄환처럼 애도의 문장들이 일제히 허공에 쏘아지고
그와 동시에 애도가 되지도 애도를 하지도 못한 문장들이 뜨거운 탄피처럼 우수수 바닥에 떨어지는데
그 어떤 문장들도 표적에 도달하지 못하고 다만 이곳을 배회하고 있던 나의 마음만을 엉뚱하게 꿰뚫을 때다.
나는 그 누구도 내가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그 누구도 무엇을 금지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서 허락되지 않은 방식으로만 굳이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 방식이라 함은 이입하는 것, 동일시하는 것, 유관해지는 것, 그리하여 그 애도에 동참하는 것, 그것만은 틀렸을 텐데도, 이 모든 것을 너무 늦지 않게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되, 적어도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는데도, 애도와 애도 불가능성에 관한 그 모든 염불을 외느라 뻐끔거리고 싶지는 않았는데도… 나는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문장들을 쓰고 그걸 사람들을 모아놓고 읽기로 하고 그래서 사람들을 초대했으면서, 그럼으로써 이곳에 오는 이들을 침입자로 혹은 불침번으로 만들어 버리면서 오발탄이 될 무수한 총알들을 사방으로 쏘아대는 와중에 내가 뭔가 제대로 된 문장을 남길 수 있기를 – “내가 살아있어서 기뻐”? – 바랄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고, 쓸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의 더미 속에서 나는 내 앞에 앉은 누군가가 파쇄된 종이 다발을 줄줄이 꼬아 꽃처럼 보이는 것을 만들어 다른 누군가의 머리 위에 몰래 올려놓는 것을 지켜본다.
그러니까 이 공연에 대해 그냥 쓸 수는 없다. 모든 것이 허락된 동시에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 – 통곡하기 – 만은 도무지 할 수 없게 되는 이 조그만 공연에 대해, 무엇이나 쓸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 무엇도 쓸 수 없다. 나는 시몬과 보영의 낭독된 원고를 받았음에도 그중 단 한 문장도 인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이 지면에서 내가 한 일은, 낯선 이들의 침범을 막으려는 미력한 몸짓처럼, 그러한 침범의 경로를 역으로 넘어오려는 최후의 도발처럼, 하필 그 자리에 그런 꼴로밖에 있을 수 없었다는 듯한 체념 어린 포복처럼, 이 모든 상황에 대한 고집스런 함구처럼 여기 엎드려 누워
그들의 공연을 파쇄기에 넣어 갈가리 간 다음
줄줄이 꼬아 꽃이기도 하고 꽃이 아니기도 한 무엇으로 만들어
모르는 사람의 머리 위에 올려두는 것이다.
〈침범, 불침번〉©스페이스 미라주
〈침범, 불침번〉
2024년 4월 26일(금), 27일(토) 19:00~
스페이스 미라주(서울 중구 을지로 130-1 401호)
작가 시몬, 보영
기획 고립공동체
그래픽 디자인 zozo
주최 스페이스 미라주
사진 zozo, 정현배